제25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
(2025년 12월 28일 - 2026년 1월 3일)
생명 수호가 선물하는 참평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성탄 축제와 함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시작으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 성화 주간을 맞이하였습니다. 가정 성화 주간은 일치와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 본연의 모습을 깊이 돌아보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또한 가정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고 마음을 다잡는 뜻깊은 시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한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시며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라고 말씀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선물을 이어 가도록 남자와 여자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이루는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단순한 외적 생활의 공간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이 흘러넘치는 가장 작은 교회 곧 ‘가정 교회’입니다. 이러한 가정 교회는 생명을 환대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켜 주고 보호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하느님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교회도 이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며, 모든 생명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안전히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가정과 교회는 살아갈 방법을 제각기 찾는 각자도생이 아닌 한마음으로 서로 돕는 동심협력을 지향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가정과 교회가 함께 수호해야 할 생명이 때때로 위험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죽음의 문화’라 일컬어지는 생명을 거스르는 행위나 왜곡된 가치관으로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위협받습니다. 그 결과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인간 생명이 침범받고 파괴되기까지 하며, 우리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죽음의 문화에 휩쓸리며 어느 결에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낙태 정당화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와 법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최근 다시 논의되고 있는 「모자 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는 태아의 생명이 더욱 취약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담겨 있습니다. 낙태의 전면 허용과 약물 오용에 따른 위험의 신호들을 마주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법적, 사회적, 개인적 이유도, 무고한 생명을 직접적으로 빼앗는 행위는 결코 정당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어떠한 법적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그릇된 생명관에 맞서, 신앙 안에서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한결같이 외치며, 생명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 내야 합니다.
특별히 법과 제도는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한 이를 그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야 합니다. 태아는 우리가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하는 약자입니다. 그리고 생명에 관한 기준이 완화될 때 사회 전체의 생명 문화 또한 심각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저마다의 사정으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낙태를 고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상황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가 담긴 예수님의 눈길로 그들이 받은 상처와 위기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린 신뢰와 희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경청하고 공감하며 손을 내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믿음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곧 판단하기에 앞서 함께 아파하고, 취약함을 돌보며, 동행하고자 합니다.
생명 수호에는 많은 어려움과 불편이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잉태된 생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소중한 임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이며, 보호는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 수호의 막중한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참평화를 선물로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참행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오늘도 ‘생명 수호 순례’의 여정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이 주님 성탄의 신비 안에서 거룩함의 은총으로 생명의 향기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 문 창 우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