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미사의 영성 (38) 영성체 전 ‘주님의 기도’
어떤 신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미사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혼자 ‘아멘’이라고 해서 엄청 창피했어요.” 그런데 왜 미사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나서는 ‘아멘’이라 하지 않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 때 왜 주님의 기도를 바치나요?
사실 주님의 기도는 초대 교회 때부터 전례나 개인 기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세례 받은 모든 신자는 일상 안에서 기도를 실천하기 위해 날마다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 안에서 주님의 기도가 미사 전례 안에 차츰 도입되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 있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표현과 관련해서 교회의 교부들은 무엇보다 성체와 연결시켜 이 양식의 의미를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차츰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를 위한 가장 좋은 준비 기도로 여겨지게 되었고, 4세기경 동·서방 전례에 모두 도입됩니다. 그래서 가령 테르툴리아누스 성인(Tertullianus, 155~240)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청을 영성적으로 알아들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신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과 연관해서입니다. ‘죄의 용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영성체를 위한 훌륭한 간구로 여겨졌습니다. ‘죄의 용서’를 청함으로써 거룩한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모습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Augustinus, 354~430)은 신자들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비록 우리가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얼굴은 일상사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얼굴을 씻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깨끗한 얼굴’ 로 이 거룩한 식탁에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깨끗이 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목욕은 고해성사와 연관되어 우리 죄를 씻는 것이며, 얼굴을 씻는 것은 주님의 기도 안에 있는 ‘용서를 청하는 부분’과 연관되어 일상의 잘못을 씻고 비로소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사 중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로서 영성체를 준비하고, ‘죄의 용서’를 청함으로써 거룩한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사 때 바치는 주님의 기도 다음에 ‘아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오는 사제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 내용과 신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시길, 그리고 모든 시련에서의 보호와 복된 희망 안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아버지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정성되이 준비하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향해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구원을 향한 신앙의 여정을 기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8일(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 춘천주보 4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