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미사의 영성 (39) 평화의 인사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다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경우에는 서로를 소개하고, 원래 아는 사람의 경우에는 서로 안부를 물음으로써 유대감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사의 의미는 사실 가만히 보면 단순한 안부 나눔이 아닙니다. 한 존재와 또 다른 한 존재, 그리고 한 사람의 지난 삶의 역사가 또 한 사람의 삶의 역사를 만나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입니다. ‘나’와 ‘너’를 떠나 ‘우리’가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매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서로 나눕니다. 그런데 미사 때 이 인사는 왜 하는 것일까요? 사실 미사를 시작하면서 바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특히 주일 미사 같은 경우는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신자들도 있으니 미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반갑게 인사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영성체 전에 평화의 인사를 서로 나눌까요?
미사 때 신자들이 서로 나누는 평화의 인사는 로마서(16,16)에 나오는 “거룩한 입맞춤”이나 베드로 I서(5,14)에 나오는 “사랑의 입맞춤”이란 의미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실 이 평화의 인사는 화해와 일치의 의미로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특히 영성체를 통해 성체를 모시며 그리스도와 일치하기에 앞서, 먼저 신자들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함으로써 주님을 모실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러한 평화의 인사를 예물 봉헌 전에 실시하였습니다. 이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과 화해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마태 5,23-24 참조). 이런 측면에서 예루살렘의 치릴로(315-387) 성인은 평화의 인사를 화해의 표시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다툼과 갈등이 있다면 이 평화의 인사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다 이 예식은 7세기경부터 영성체 전으로 그 순서가 옮겨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화해와 평화를 통한 서로 간의 일치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영성체 전에 이런 평화의 인사를 서로 나누도록 한 것입니다. 신자들 간의 일치를 넘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평화의 인사는 궁극적으로 ‘신앙인 공동체의 일치’를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향한 예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인사는 단순히 주위 사람들과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누는 시간이 아닙니다. 신앙인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나누고 기원하는 기도이자 서로를 향한 축복입니다. 더 나아가 천상 예루살렘에서 누릴 종말론적인 완전한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일치하여 걸어가야 하는 신앙 공동체의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15일(가해) 연중 제2주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