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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신앙교리부·교황청 문화교육부

인공 지능과 인간 지성의 관계에 관한 공지

 

옛것과 새것


(Antiqua et Nova)

 

I. 들어가며

1.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 우리는 옛것이든 새것이든(마태 13,52 참조) 모든 지혜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 특히 최근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발전이 제기한 오늘날의 도전과 기회를 성찰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지성이라는 선물을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 측면으로 여긴다. 인간 인격에 대한 통합적 관점과 땅을 “일구고 돌보게”(창세 2,15) 하신 성경의 부르심에서 출발하여, 교회는 이 지성의 선물이 이성과 기술 능력의 책임 있는 사용을 통하여 창조 세계에 봉사하는 데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 교회는 과학, 기술, 예술과 또 다른 형태의 인간 노력의 진보를 “보이는 피조물을 완전하게 하고자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께 협력하는 것”1)으로 여기고 장려한다. 집회서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어 당신의 놀라운 업적을 보고 당신을 찬양하도록 하셨다”(집회 38,6). 인간의 능력과 창의성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고, 올바로 사용되면 하느님의 지혜와 선을 반영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에 비추어, ‘인간 됨’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 우리의 과학적 기술적 능력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3. 이 공지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인간학적 윤리적 도전들을 다룬다. 이 기술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이를 설계한 인간 지성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도전들은 특히 중요한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다른 많은 발명품과는 달리 인공 지능은 인간 창의성의 결과물로 훈련될 수 있으며, 흔히 인간의 역량과 경쟁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속도와 기량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것과 구별하기 어려운 글과 이미지 등 새로운 ‘인공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공론의 장에서 점점 커져 가는 진리의 위기에 인공 지능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관한 중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 기술은 학습하고 자동적으로 특정 선택들을 내리도록 설계되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개발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는 윤리적 책임과 인간의 안전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을 제기하고 사회 전체에 널리 영향을 미친다. 이 새로운 상황은 인류가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 안에서의 역할에 관하여 성찰하게 한다.

 

4.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인공 지능은 바로 인류와 기술의 관계에서 새롭고도 중대한 국면을 나타내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묘사하신 “시대적 변화”2)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인공 지능의 영향은 대인관계, 교육, 노동, 예술, 보건, 법률, 전쟁과 국제 관계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영역에서 체감되고 있다. 인공 지능이 더 큰 성과를 향하여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그 인간학적 윤리적 함의를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위험을 줄이고 피해를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애플리케이션들이 인간 진보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5. 인공 지능에 관한 식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마음의 지혜”3)를 새롭게 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하여 교회는 자신의 경험을 이 공지에 포함된 인간학적 윤리적 성찰을 통하여 제시한다. 교회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전 세계적 대화에서 능동적 역할을 헌신적으로 수행하며, 부모, 교사, 사목자, 주교를 비롯하여 신앙 전수의 임무를 맡은 이들이 이 중대한 주제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며 헌신하도록 초대한다. 이 문서는 특히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범위의 대중, 특히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과 공동선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공통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읽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4)

 

6. 이를 위하여, 이 공지는 인공 지능과 인간 지성에서 지능(지성)(역자 주: 이 번역문에서는 원문 intelligence를, artificial intelligence의 경우에는 학습 능력, 통계적 추론 등을 포괄하는 인지적 능력을 반영한 ‘인공 지능’으로, human intelligence의 경우에는 더욱 고차원적이고 통찰적 사고, 가치 판단, 창의성 등 인간 정신의 특징을 반영한 ‘인간 지성’으로 번역한다.)의 개념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런 뒤에 인간 지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를 고찰하며 교회의 철학적 신학적 전통에 뿌리내린 성찰의 틀을 제공한다. 끝으로 이 공지는 인공 지능의 발전과 사용이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고 인간과 사회의 온전한 발전을 증진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II. 인공 지능이란 무엇인가?

7. 인공 지능에서 ‘지능’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여러 관념을 취합하며 서서히 발전해 왔다. 그 기원은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존 맥카시가 ‘인공 지능’ 문제의 연구를 위하여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하계 연수를 개최한 1956년에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맥카시는 인공 지능 문제를, “인간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지적이라고 할 만한 방식으로 기계가 행동하도록 만드는 문제”5)라고 밝혔다. 이 연수에서는 인간 지성과 지적 행동과 전형적으로 관련 있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 고안에 초점을 맞춘 연구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8. 그때부터 인공 지능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하며 고도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6) 이러한 ‘협소 인공 지능’(narrow AI) 시스템은, 번역, 태풍의 진로 예측, 이미지 분류, 질문에 대한 응답, 또는 사용자의 요청을 받아 시각적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과 같이 특수하고 한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특별히 설계되었다. 인공 지능 연구에서 ‘지능’이라는 말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인공 지능 시스템, 특히 기계 학습을 이용하는 시스템은 논리적 추론보다 통계적 추론에 의존한다. 인공 지능은 패턴을 식별하기 위한 거대한 데이터 세트(data set)를 분석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하는 인간의 전형적 인지 과정을 모방하여 결과를 ‘예측’7)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성취들은 컴퓨터 기술(신경망, 비지도 기계 학습[unsupervised machine learning], 진화 알고리즘)의 발전과 하드웨어의 혁신(전문 프로세서)으로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에 힘입어 인공 지능 시스템은 인간의 다양한 입력에 응답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원 개발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참신한 해결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8)

 

9. 이러한 급속한 발전으로 한때는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많은 과업이 이제는 인공 지능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많은 영역, 특히 데이터 분석, 이미지 식별, 의학적 진단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도 있다. 각각의 협소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은 특정한 과업을 위하여 적용되도록 설계되었으나, 많은 연구자들은 인지 영역 전반에서 작동 가능한 단일 시스템이자 인간 지성의 범위 안의 어떤 과업이든 수행하는 이른바 범용 인공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어떤 이는 어느 날 범용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초지능’ 상태를 달성하거나 생명 공학의 발전을 통하여 ‘초장수’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러한 가능성이 가설일지라도 어느 날 인간이 그 빛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반면, 또 어떤 이는 이러한 잠재적 변화를 환영한다.9)

 

10. 이러한 생각과 이 주제에 관한 다른 많은 관점들의 기저에는 ‘지능(지성)’이라는 용어가 인간 지성과 인공 지능에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추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그 개념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지성은 인격 전체와 관련된 능력인 반면, 인공 지능에서 ‘지능’은 흔히 인간 정신의 특징적인 활동이 기계로 복제 가능한 디지털 단계들로 분화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기능적으로 이해된다.10)

 

11. 이러한 기능적인 관점의 전형적인 예로 ‘튜링 테스트’(Turing Test)가 있다. 튜링 테스트는 한 사람이 인간의 행위와 기계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할 경우 그 기계를 ‘지능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11)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행위’라는 용어는 특수한 지적 과제의 수행만을 가리킨다. 추상, 감정, 창의성과 미학적, 도덕적, 종교적 감수성 등의 인간 경험 전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 정신의 특징적인 모든 폭넓은 표현을 포함하지도 못한다. 반면에 인공 지능의 경우, 시스템의 ‘지능’은 방법론적으로 그러나 환원주의적으로도 평가된다. 곧,적절한 응답들을,이 경우에는 인간 지성과 연관된 응답들을,그 생성 방식과는 무관하게 만들어 내는 능력에 기초하여 평가된다.

 

12. 인공 지능의 고급 기능은 과제를 수행하는 정교한 능력을 부여하지만 사고하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12) 이러한 구분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지능(지성)’이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따라 필연적으로 인간의 사고와 이러한 기술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13) 이를 인식하려면 지능(지성)에 대하여 더욱 깊고 포괄적인 이해, 곧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과 소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의 핵심적인 이해를 제시하는 철학 전통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풍성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14)

III. 철학과 신학 전통에서 지성

이성

 

13. 인간이 자기성찰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데에 정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그 본성상 앎을 갈망한다.”15)는 점을 언급했다. 사물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하는 추상화 능력을 지니는 이러한 앎은 인간을 동물의 세계와 구분한다.16) 철학자와 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지적 능력의 정확한 본질을 검토해 오면서, 인간이 세상과 그 안에서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도 탐구해 왔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전통은 인간을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 세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세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7)

 

14. 고전 전통에서 지성의 개념은 흔히 ‘이성’(ratio)과 ‘지성’(intellectus)의 보완적인 개념을 통하여 이해되곤 한다. 이것들은 구분되는 능력들이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설명하듯 같은 지성이 작동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지성이라는 용어는 진리에 대한 내적 이해에서 비롯되는 반면, 이성이라는 용어는 탐색과 담론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18) 이렇게 간결한 설명은 인간 지성의 근본적이고 보완적인 두 가지 차원을 강조한다. 지성은 진리의 직관적인 이해, 곧 마음의 ‘눈’으로 진리를 파악하는 것으로, 이는 논증에 앞서고 논증의 기반이 된다. 이성은 참되고 올바르게 추론하는 것, 곧 판단으로 나아가는 담론적이고 분석적인 과정과 관련된다. 지성과 이성, 이 두 가지는 함께, 이해하는(intelligere) 행위 곧 “인간 본연의 고유한 활동”19)의 두 가지 측면을 형성한다.

 

15.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을 특수한 사고방식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이해 능력이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고 그 안에 스며들어 있음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20) 올바르게 사용되었든 그렇지 않든, 이러한 능력은 인간 본성의 내재적 측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성적’이라는 단어는 사실 인간 존재의 모든 능력을 포함한다. 지각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원하고 사랑하며 선택하고 욕구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이성적’이라는 용어는 또한 위에서 말한 능력과 내밀하게 결합된 모든 육체적 능력 또한 포함한다.”21) 이러한 폭넓은 관점은, 이성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안에서 어떻게 인간의 의지와 행위 모두를 고양시키고 형성하며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는지를 강조한다.22)

 

육화

 

16. 그리스도교 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육화된 존재로 바라보는 통합적 인간학의 토대 안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고찰한다.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23) 다시 말해, 영혼은 그저 육체에 담긴 인격의 비물질적 ‘부분’이 아니고, 육체도 무형의 ‘핵심’이 머무르는 외피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전 존재는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이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이 육체적 실존 안에서 그리고 육체적 실존을 통해서 하느님과 맺는 관계 그리고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를 (따라서 참된 영적 차원을)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한다.24) 이러한 조건의 심오한 의미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고상한 품위로 들어 높이신”25) 육화의 신비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17. 인간은 육체적 실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더라도, “영원과 시간의 지평 위에 있는 것과 같은”26) 영혼을 통하여 물질 세계를 초월한다. 지성의 초월 능력과 자유의지의 자기 소유는 영혼에 속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지성의 빛을 나누어 받는다.”27) 그럼에도, 인간의 영은 육체 없이는 본연의 정상적인 앎의 방식을 수행하지 못한다.28) 그리하여 인간의 지적 능력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룬다는”29) 점을 인식하는 인간학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이해의 추가적인 측면들은 다음 항들에서 전개될 것이다.

 

관계성

 

18. 인간은 서로를 알고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며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지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인간들과 친교를 이루도록 질서 지어져 있다.”30) 따라서 인간 지성은 고립된 능력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발휘되며, 대화와 협력과 연대 안에서 가장 충만하게 표현된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배우고, 타인을 통해서 배운다.

 

19. 인간의 관계 지향성은 창조와 구원 안에서 당신 사랑을 드러내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자기 증여에 궁극적 기반을 두고 있다.31) 인간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32)

 

20.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이 소명은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루라는 부르심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1요한 4,20; 마태 22,37-39 참조).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아낌없는 내어 주심을 본받도록 부르심을 받았다(2코린 9,8-11; 에페 5,1-2 참조).33) 자신을 내어 주시는 하느님 생명을 반영하는 사랑과 봉사는 인간 소명에 더욱 충실히 응답하기 위하여 개인의 이익을 초월한다(1요한 2,9 참조). 많은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숭고한 것은 서로 돌보는 헌신이다.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진리와의 관계

 

21. 인간의 지성은 궁극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련된 하느님의 선물이다.”34) ‘지성-이성’(intellectus-ratio)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 지성은 인간이 그저 감각적인 경험이나 효용을 넘어서는 실재들을 탐구할 수 있게 한다. “진리를 향한 열망이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일부”이고, “사물들이 왜 지금 있는 모습으로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은 인간 이성의 타고난 속성이기”35) 때문이다. 인간 지성은 경험 데이터의 한계를 넘어 “실재를 참으로 확실하게 인식할”36) 수 있다. 실재는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진리를 향한 열망은 “이성이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한다. 참으로 그것은 언제나 이성이 이미 성취한 것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는 데 압도당하는 것과 같다.”37) 진리는 그 자체로 인간 지성의 한계를 초월하지만, 인간 지성은 불가항력적으로 이에 이끌린다.38) 이러한 이끌림으로 인간은 “더욱 심오한 진리”39)를 추구하게 된다.

 

22. 진리 추구를 향한 이러한 내재적 움직임은 특히 의미론적 이해와 창의성이라는 특유의 인간 역량에서 드러나는데,40) 이러한 진리 추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성에 알맞은 방법으로”41) 이루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한 확고한 지향은 참되고 보편적인 애덕을 위하여 필수적이다.42)

 

23. 진리의 추구는 물리적 창조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에 대한 개방성 안에서 가장 탁월하게 표현된다. 모든 진리는 하느님 안에서 궁극적이고 본래적인 의미에 이른다.43)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은 “그 사람의 온 존재가 참여하는 근본적인 결단의 순간”44)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은 온전히 자신이 부름받은 모습이 될 수 있다. 곧, “지성과 의지는 그 영적 본성을 드러내고,” 인간이 “자신의 자유(libertas)를 충만하게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행동”45)할 수 있게 해 준다.

 

세상의 돌봄

 

24. 그리스도교 신앙은 창조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로 이해한다. 바뇨레조의 보나벤투라 성인이 설명하듯,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46) 창조하신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창조하시기 때문에(지혜 9,9; 예레 10,12 참조), 창조 세계에는 하느님의 계획을 반영하는 내재적 질서가 스며들어 있다(창세 1장; 다니 2,21-22; 이사 45,18; 시편 74[73],12-17; 104[103]편 참조)47).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질서 안에서 인간이 유일무이한 역할을 맡도록 부르셨다. 바로,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이다.48)

 

25. 장인이신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진 인간은 피조물을 ‘일구고 돌봄으로써’(창세 2,15 참조), 곧 자신의 지성과 능력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피조물을 돕고 발전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모상으로’(in imago Dei) 창조된 존재인 자신의 정체성을 살아간다.49) 이때 인간 지성은, 만물을 창조하셨고50) 계속 지켜 주시며 당신 안에서 그들의 궁극적 목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지성을 반영한다(창세 1─2장; 요한 1장 참조).51) 나아가, 인간은 과학 기술 능력을 발전시키도록 부름받았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집회 38,6 참조). 그러므로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한편으로, 인간은 지성과 능력을 발휘하여 피조물을 그 부름받은 목적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 협력한다.52) 다른 한편으로, 보나벤투라 성인의 말처럼, 피조물 자체는 인간 정신이 “최고 원리이신 하느님을 향하여 점진적으로 올라가도록”53) 도와준다.

 

인간 지성의 온전한 이해

 

26.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지성은 인간 전체가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으로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된다. 진정한 현실 참여에는 존재 전체, 곧 그의 영적, 인지적, 육체적, 관계적 측면이 포함되어야 한다.

 

27. 이와 같은 현실 참여는, 각 사람이 다양한 개별성 안에서54) 인간 지성의 여러 차원들의 조화로운 상호 작용을 통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 맺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성을 드러내며 온전한 행복을 추구할 때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55) 이는 논리적 언어적 능력을 비롯하여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다른 방법들도 포함할 수 있다. “비활성 질료 안에서 타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특별한 형상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56) 통찰과 실제적 기술로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장인의 작업을 생각해 보자. 땅과 가까이 살고 있는 토착민들은 종종 자연과 그 주기에 대한 심오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57) 마찬가지로,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친구나 인간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자기 성찰, 대화, 사람들과 편견 없는 만남의 결실인”58) 지성의 모범을 보여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대로, “이 인공 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시와 사랑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59)

 

28. 지성에 관한 그리스도교 이해의 핵심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의 빛으로 인간의 행위를 이끌어 인간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삶을 진리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하느님 계획에 따르면, 가장 충만한 의미에서 지성은 진선미(眞善美)를 맛볼 수 있는 능력도 포함한다. 20세기 프랑스 시인인 폴 클로델이 표현했듯이, “기쁨이 없으면 지성은 아무것도 아니다.”60) 마찬가지로, 『신곡-천국 편』에서 가장 높은 천국에 이른 단테는 이러한 지적 기쁨의 정점이 “모든 감미로움을 초월하는 기쁨, 그 기쁨으로 가득 찬 참된 선의 사랑, 그 사랑으로 충만한 지성의 빛”61) 안에 있다고 증언한다.

 

29. 그러므로 인간 지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단순한 사실의 습득이나 특정 과업의 수행능력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삶의 궁극적 질문들에 대한 인격적 개방성을 포함하고, 진리와 선에 대한 지향을 반영한다.62)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 모습의 표현인 인간 지성은 존재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곧,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의 충만함 안에서 존재를 성찰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믿는 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은 특히, 계시된 진리에 더욱 굳건히 다가갈 수 있도록 이성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intellectus fidei, 신앙의 지성).63) 참된 지성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로마 5,5 참조) 하느님 사랑으로 형성된다. 그리하여 인간 지성은 본질적으로 관상적 차원, 곧 모든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진선미에 대한 사심 없는 개방성을 지닌다.

 

인공 지능의 한계

 

30. 지금까지 이루어진 논의에 비추어, 인간 지성과 현대의 인공 지능 시스템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인공 지능은 인간 지성과 관련된 일부 결과물을 모방할 수 있는 비범한 기술적 성취이지만, 그 작동은 수량 데이터와 계산 논리에 기반하여 과제를 수행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분석력으로 인공 지능은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복잡한 시스템 모형을 만들고, 학제간 연결을 촉진하는 데에 탁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공 지능은 “단일한 관점이나 이해관계들로만 다루어질 수 없는”64)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문가들의 협력에 이바지할 수 있다.

 

31. 그러나 인공 지능이 지성의 특정 표현들을 정교화하고 지성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공 지능은 내재적 한계를 지우는 논리 수학적 구조에 한정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 지성은 몸으로 살아낸 수많은 경험으로 형성되는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성장 과정을 통틀어 유기적으로 발전한다. 첨단 인공 지능 시스템은 기계 학습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학습’할 수 있지만, 이러한 종류의 훈련은 감각적 자극, 감정적 반응, 사회적 상호 작용, 그리고 각 상황의 고유한 맥락을 포함한 구체적 경험들로 형성되는 인간 지성의 발전적 성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의 역사 안에서 개인들을 발전시키고 형성한다. 반면, 물리적 몸이 없는 인공 지능은 기록된 인간 경험과 지식을 포함한 광대한 데이터 세트에 기반한 계산적 추론과 학습에 의존한다.

 

32. 따라서 인공 지능이 인간 추론의 측면들을 모방하고 특정 과제를 놀랍도록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여도, 그 계산 능력은 그저 인간 정신의 광범위한 능력의 단편일 뿐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인공 지능은 윤리적 식별이나 참된 관계를 정립하는 능력을 모방할 수 없다. 더욱이, 한 사람의 지성은 그가 개인적으로 살아 온 지적 도덕적 양성의 역사 안에 자리하고, 이 역사는 개인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형성해 준다. 여기에는 삶의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도덕적, 영적 차원이 포함된다. 이처럼 온전한 이해를 인공 지능은 제공할 수 없기에, 이 기술에만 의존하거나 이를 세상을 해석하는 주요 수단으로 삼는 접근 방식은 “전체에 대한 감각, 사물들의 관계에 대한 감각, 넓은 지평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65) 할 수 있다.

 

33. 인간 지성은 기능적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든 차원을 이해하고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인간 지성은 또한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공 지능이 육체성과 관계성, 진리와 선에 대한 인간 마음의 개방성이 지니는 풍성함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인공 지능의 능력이 무한해 보일지라도 현실을 파악하는 인간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질병에서, 화해의 수용에서, 단순한 일몰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이 하는 많은 경험은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지혜를 얻을 가능성을 준다. 오로지 데이터로만 작동하는 그 어떤 기계 장치도 이러한 경험들과 우리 삶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경험에 필적할 수 없다.

 

34. 인간 지성과 인공 지능을 지나치게 동등하게 보는 것은 기능주의적 관점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특정 기술이나 인지적 기술적 성취나 개인적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 기반한 개인의 타고난 존엄성에 달려 있다.66) 이러한 존엄성은 태아든, 의식이 없는 이든, 고통받는 노인이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들의 경우를 포함한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온전히 남아 있다.67) 이러한 존엄성은 또한 인권(특히 현재 ‘뇌 신경권’[neuro-rights]: 역주 – 뇌 신경 활동으로 생성되는 개인의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이라고 부르는)의 전통을 뒷받침한다. 인권은 “공통된 기반을 찾기 위한 중요한 수렴점”68)이고 그러하기에 인공 지능의 책임 있는 개발과 사용을 위한 논의에서 근본적 윤리 지침으로 쓰일 수 있다.

 

35. 이 모든 점을 고려하였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공 지능과 관련하여 “‘지능’이라는 말의 사용 자체는 오해를 부를 수 있으며”69)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간과할 위험이 있다. 이에 비추어, 인공 지능은 인간 지성의 인공적 형태가 아니라 인간 지성의 산물로 여겨져야 한다.70)

 

IV. 인공 지능의 개발과 사용을 인도하는 윤리의 역할

 

36. 이러한 숙고를 통하여, 인공 지능이 어떻게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에 응답하려면, 기술-과학 활동은 특성상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창의력의 인본주의적이고 문화적인 차원과 관련된 인간의 노력임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71)

 

37. 인간 지성 안에 새겨진 잠재력의 결실인72) 과학 탐구와 기술 능력 개발은 “보이는 피조물을 완전하게 하고자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께 협력하는 것”73)의 일환이다. 동시에, 모든 과학 기술 성취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74) 그러하기에 언제나 인간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드높은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야 한다.75)

 

38. 우리는 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위협하고 제한하는 많은 폐단들을 개선해 왔는지를”76) 감사의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든 기술적 진보 그 자체가 진정한 인간 발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77) 교회는 특히 생명의 신성함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그러한 애플리케이션들을 반대한다.78) 인간의 모든 노력과 마찬가지로 기술 발전의 지향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기술의 발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79) 있는 “더 큰 정의, 더 넓은 형제애, 사회관계에서 더 인간다운 질서”를 추구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 연합들도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함의에 대하여 함께 염려하며 이러한 발전을 책임 있게 인도하는 윤리적 성찰을 점점 더 요청하고 있다.

 

39. 이러한 도전들에 대응하려면,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에 기반한 도덕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지도 원칙은 인공 지능에 관한 문제들에도 적용된다. 이 분야에서는 윤리적 차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사용 목적을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80) 기계와 인간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진정한 도덕적 행위자, 곧 자신의 결정에 자유를 행사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도덕적 책임의 주체이다.81) 기계가 아닌 바로 인간만이 도덕적 양심의 인도 아래 진리와 선과 관계를 맺고 있다. 도덕적 양심은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회피하도록”82) 인간을 부르고,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기준으로 하여 진리의 권위를 입증하는데, 인간은 이 최고선의 매력에 이끌린다.”83) 오직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충분히 인식하여 양심의 소리를 듣고 따르며 신중하게 식별하고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선을 추구할 수 있다.84) 실제로 이 모든 것도 인격의 지성이 발휘되는 것에 속한다.

 

40. 인간 창의성의 모든 산물처럼 인공 지능도 긍정적 또는 부정적 목적을 향할 수 있다.85) 인공 지능은,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인간 소명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듯, 이 분야에도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인간의 자유는 잘못된 것을 선택할 가능성을 허용하기에, 이러한 기술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그 지향과 사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41. 이와 동시에, 목적만이 아니라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도 윤리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에 입력되는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과 이해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의 산물은 그 개발자, 소유자, 사용자, 규제자의 세계관을 반영하고,86) “세상을 형성하고 가치 차원에서 양심을 사로잡을”87) 힘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일부 기술 발전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 관계들과 권력의 역학을 강화할 수도 있다.

 

42. 따라서 인공 지능의 적용에 사용되는 목적과 수단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전반적인 관점을 모두 평가하여, 그러한 목적과 수단과 관점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공동선을 증진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88)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의 고유한 존엄성”이 “신흥 기술들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사회 경제 분야를 포함하여 “인간 삶의 모든 수준에서 그 존엄성을 더 잘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될수록 윤리적으로 유익한 것으로 입증될 것이다.”89) 이러한 의미에서, 기술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선에 맞게 기술을 사용하도록 선도하는 데에도 인간 지성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90) 가톨릭 사회 교리의 보조성의 원리와 그 밖의 원리들에 따라 관리할 책임이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있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의 자유와 의사 결정에 대한 도움

 

43. 인공 지능이 언제나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최고 가치와 충만한 인간 소명을 지지하고 증진하도록 보장할 책무는 인공 지능의 개발자, 소유자, 운용자, 규제자뿐만 아니라 인공 지능 사용자에게도 식별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는 기술을 사용하는 그 모든 적용 단계에서도 늘 유효하다.

 

44. 이 지도 원칙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도덕적 책임의 중요성을 숙고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온전한 의미의 도덕적 인과성은 인공적 행위물이 아닌 인격적 행위자에게만 속하므로, 인공 지능에 관련된 과정, 특히 학습, 교정, 재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과정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파악하고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적(bottom-up) 방식과 심층적 신경망은, 인공 지능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지만, 인공 지능이 채택한 그 해결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로써 책임 규명이 복잡해진다.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산출하는 경우에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결과가 중장기적으로만 명확해질 수 있는 복잡하고 고도로 자동화된 환경에서 이에 관한 책임을 부여하는 과정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인공 지능을 사용하여 내린 결정에 대한 최종 책임은 의사 결정자인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의 각 단계에서 인공 지능 사용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91)

 

45. 책임자를 결정하는 것 외에도, 인공 지능 시스템에 부여된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비지도 자율 학습 기제’(unsupervised autonomous learning mechanisms)를 사용하고 이따금 인간이 재구성할 수 없는 경로를 따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부여한 목표를 추구하고 설계자와 개발자가 설정한 과정에 따라 운영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도전을 제기한다. 인공 지능 모형들이 점점 더 독립적인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러한 애플리케이션들이 인간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인공 지능 모형들에 대한 통제력은 실제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해야 인공 지능 시스템들이 사람들의 선익을 지향하고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질서 지어지도록 보장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46. 인공 지능 시스템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책임은, 우선 그 시스템을 개발하고 제작하며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들에게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언급하셨듯이, 기계는 “잘 정립된 기준이나 통계적 추론에 기초하여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기술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92) 인공 지능을 사용하여 작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위임한 권한에 대하여 결국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 지능이 인간의 의사 결정을 도울 수 있으려면, 이를 구동하는 알고리즘은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정보 불일치를 처리할 정도로 충분히 견고하고, 편향성과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게 그 작동 방식이 투명해야 한다.93) 규범적 틀은, 투명성과 사생활과 책임성에 대한 적절한 보호 조치와 더불어, 모든 법적 단체가 인공 지능 사용과 그 모든 결과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94) 또한 인공 지능 사용자들은 결정을 내릴 때, 인공 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이미 높은 현대 사회의 기술 의존도를 더욱 부추기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47. 교회의 도덕적 사회적 가르침은 인공 지능이 인간의 행위 능력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돕는 자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정의에 관한 고찰은 공정한 사회 역동성을 장려하고 국제 안보를 유지하며 평화를 증진하는 문제들도 다루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인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인공 지능을 사용하는 방안을 현명하게 식별하는 동시에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환경을 해칠 수 있는 방향으로 인공 지능이 적용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임’의 개념은 좁은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저 달성한 결과들을 설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인을 돌볼 책임”95)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48. 따라서 인공 지능은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선으로 부름받은 인류 소명에 대한 의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응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대로, 인공 지능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보장하며 이러한 소명에 부응하려면 인간 지성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고귀한 존엄성”을 인정하며 “사회 질서와 그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여야 한다.”96)고 확언하였다. 이에 비추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공 지능의 사용에는 “공동선의 관점에 기초한 윤리, 곧 타인과 피조물 전체와 이루는 관계에서 사람들의 충만한 발전을 증진할 수 있는 자유와 책임과 형제애의 윤리”97)가 따라야 한다.

V. 특수한 문제들

49. 이러한 전반적인 관점에서, 앞서 언급한 주장들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제안하신 ‘마음의 지혜’98)에 따라 실제 상황에 윤리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여기에서는 몇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논의가 전부는 아니지만, 인공 지능이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을 숙고하는 대화를 위하여 이 논의를 제시하는 바이다.99)

 

인공 지능과 사회

 

50.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이 타고난 존엄과 한 인류 가족의 구성원으로 우리를 묶어 주는 형제애가 신기술의 발전을 뒷받침하고 그 사용에 앞서 이를 평가하는 데에 확고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100)

 

51.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공 지능은 “농업, 교육, 문화에 중요한 혁신을 가져오고, 모든 나라와 민족의 삶의 수준을 높이며, 인간의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증진할” 수 있고, 그리하여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데에 사용”101)될 수 있다. 또한 인공 지능은 단체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파악하고 차별과 소외에 맞서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여러 방식으로, 인공 지능은 인간 발전과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다.102)

 

52. 그러나 인공 지능은 선을 증진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 발전과 공동선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좌절시킬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는, 디지털 기술이 현대 세계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물질적 부의 격차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접근성의 격차도 심각합니다.”103) 이러한 의미에서 인공 지능은 소외와 차별을 영속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창출하며 ‘디지털 격차’를 확대하고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에 이용될 수 있다.104)

 

53. 나아가, 주요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권한이 소수의 강력한 기업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윤리적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인공 지능 시스템은 본질적인 특성상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어느 한 사람도 계산에 사용되는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 세트를 완벽하게 감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정의된 책임이 없으면, 인공 지능이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특정 산업에 유리한 여론몰이를 위하여 조작될 위험이 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그러한 단체들이 “은밀하게 침투하여 갖가지 형태의 통제를 실현할 수 있으며 양심과 민주적 절차를 조종하는 기제를 창출”105)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는 것이다.

 

54. 더욱이 인공 지능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기술 지배 패러다임’을 조장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이 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기술 수단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106) 이 기술 지배 패러다임에서는, “마치 실재와 선과 진리가 이러한 기술과 경제의 힘에서 저절로 생겨”107)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형제애는 종종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효율성을 위하여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이 침해당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108) “온 인류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과 분쟁을 심화시키는 기술 발전은 결코 참다운 발전으로 여길 수 없기”109) 때문이다. 오히려 인공 지능이 “다른 형태의 발전, 곧 좀 더 건전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통합적인 발전에 이바지하게”110) 하여야 한다.

 

55.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율성과 책임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자율성이 커질수록 공동체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각 개인의 책임도 커진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책임은, 개인의 자율성을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능력이,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에 사용하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111) 따라서 인공 지능은 단순히 경제적 또는 기술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공동선’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112)이다.

 

인공 지능과 인간관계

 

56.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단언한 대로, 인간은 “그 깊은 본성에서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도 없다.”113) 이러한 확신은 사회생활이 인간의 본성과 소명에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114)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상호 교류와 진리 추구가 수반되는 관계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진리 탐구를 돕고자 이미 발견하였거나 발견하였다고 여기는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115)

 

57. 이러한 탐구는, 인간 의사소통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역사와 사고와 신념과 관계를 지닌 개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남과 상호 교류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인간 지성이 다양하고 다면적이며 복합적인 실재, 곧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정서적이며, 개념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실재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러한 역동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야기 나눔이나 온화한 대화 또는 열정적 토론 안에서 함께 진리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침묵과 고통의 순간도 수반됩니다. 그러나 개인과 민족들의 폭넓은 경험들을 끈기 있게 모아들일 수 있습니다. …… 형제애를 건설하는 과정은 지역적이든 보편적이든 참된 만남을 향한 자유롭고도 열린 정신으로만 나아갑니다.”116)

 

58.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 지능이 인간관계에 제기하는 도전 과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른 기술 수단들처럼, 인공 지능은 인류 가족의 결속을 증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인공 지능은 현실과의 참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고, 결국 “인간관계에 매우 우울한 불만을 야기하거나 외로움이라는 해로운 감정을”117)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진정한 대인관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과 호소와 기쁨을 공유하는 풍성한 관계를 요구한다.118) 인간 지성은 상호 관계적으로 구현되는 방식을 통해서도 표현되고 풍부해지므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의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이 필수적이다.

 

59. “참다운 지혜는 현실과의 만남을 전제한다.”119) 바로 이러한 까닭에, 인공 지능의 발전은 또 다른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 인공 지능은 인간 지성의 산물을 효과적으로 모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하고 있는 상대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생성형’ 인공 지능은 일반적으로 인간과 연관된 글, 음성, 영상과 그 밖의 탁월한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 지능이 인간이 아닌 도구라는 본질을 이해하여야 한다.120) 이러한 구분은 실무자들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모호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언어가 인공 지능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60. 인공 지능의 의인화는 어린이들의 성장에 특별한 문제를 야기하여, 어린이들이 인간관계를, 챗봇(chatbot)과 하듯이, 거래 방식으로 이해하는 상호작용 양식을 발달시키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청소년들이 교사를 그들의 지적 도덕적 성장을 지도하고 길러 주는 스승이 아니라 그저 정보 제공자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 타인의 선익을 위한 확고한 헌신과 공감에 뿌리를 둔 진정한 관계는 인간의 충만한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필수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61.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은 아무리 의인화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진정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은 그저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생성되는 표정이나 문구로 축소될 수 없다. 감정은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전 존재로 세상과 자기 삶과 관계를 맺는지를 반영해 준다. 이때 신체가 그 중심 역할을 한다. 진정한 공감은 경청하고, 결코 축소시킬 수 없는 타인의 유일무이함을 인정하며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타인의 침묵 이면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요구한다.121) 인공 지능이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는 분석적 판단 영역과 달리, 진정한 공감은 관계 영역에 속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계속 구별하면서도 타인의 생생한 경험들을 직관하고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122) 인공 지능은 공감적 반응을 모방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공감이 지니는 매우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본질을 복제할 수는 없다.123)

 

62. 앞서 언급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인공 지능을 마치 하나의 인격처럼 잘못 제시하는 것을 언제나 피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속이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적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윤리적 위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육이나 성(性) 영역을 포함한 인간관계 등 다른 맥락에서 인공 지능을 이용하여 속이는 것도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어야 하고, 그 피해를 예방하고 투명성을 유지하며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하려면 면밀한 감독이 필요하다.

 

63. 갈수록 단절되어 가는 세상에서, 일부 사람들은 깊은 인간관계, 단순한 동반자 관계, 또는 심지어 정서적 유대감을 찾아 인공 지능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진정한 관계를 경험하지만, 인공 지능은 단지 그 관계를 모방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그러한 관계는 한 사람이 본연의 존재에 맞게 성장하는 데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인공 지능의 사용이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인연을 증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인공 지능은 인간의 충만한 자아실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와 다른 이들과 이루는 관계를 기술과의 상호작용으로 대체시켜 버리면, 진정한 관계성을 생명 없는 형상으로 대체시키는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시편 106[105],20; 로마 1,22-23 참조). 우리는 인공적인 세계 속으로 도피하지 말고,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공감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모든 이들과 친교의 유대를 형성함으로써, 헌신적으로 뜻있게 현실을 마주하도록 부름받고 있다.124)

 

인공 지능,경제와 노동

 

64. 인공 지능은 여러 학문이 관여하는 그 특성상 경제와 금융 체계에 점점 더 통합되고 있다. 현재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로는,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에너지, 금융, 미디어, 특히 마케팅과 영업, 물류, 기술 혁신, 규정 준수, 위기관리 분야가 있다. 또한 이러한 분야들에 인공 지능이 활용되면서, 엄청난 기회와 위험 요소를 동시에 안고 있는 인공 지능의 양면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무엇보다도 실제로 중요한 문제는,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을 소수 대기업이 장악하여, 인공 지능을 실제로 사용하는 기업들이 아니라 그러한 대기업들만 인공 지능이 창출하는 가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65. 경제-금융 분야에 대한 인공 지능 영향의 또 다른 광범한 측면들, 특히 구체적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측면들도 주의 깊게 검토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우선 사항은, 주어진 맥락 안에 다양하고 대체 가능한 형태의 경제 금융 기관들의 공존에 관한 것이다. 이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실물 경제의 발전과 안정을 촉진하여 실물 경제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이로울 수 있으므로 장려해야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어떠한 공간적 유대의 제약도 받지 않는 디지털 현실은, 특정 장소와 구체적인 역사에 뿌리를 둔 공동체들보다 더 무미건조하고 비인격적인 경향이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공동체들은 공통의 가치와 희망을 지니면서도 불가피한 의견 불일치와 차이를 특징으로 하며 공동의 길을 걸어간다. 이러한 다양성은 공동체의 경제생활에 부인할 수 없는 자산이 된다. 경제와 금융을 전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맡겨 놓으면 이러한 다양성과 풍요로움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절차와 표면적인 친밀함만 중시하는 세상에서는 관련자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경제 문제들에 대한 많은 해결책들이 더 이상 달성될 수 없게 된다.

 

66. 인공 지능이 이미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노동계이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공 지능은 수많은 직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며 다양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으로 인공 지능은 전문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노동자가 더 혁신적인 업무에 집중하게 하고 창의성과 혁신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67. 그러나 인공 지능이 단순 업무를 대신하여 생산성 향상을 약속하더라도, 기계가 노동자를 돕도록 설계되기는커녕 노동자가 기계의 속도와 요구에 적응하도록 강요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과적으로, 광고로 내세우는 인공 지능의 이점과는 달리, 현재의 기술 접근 방식은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를 자동화된 감시 아래 놓이게 하며 경직되고 반복적인 업무로 몰아갈 수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근로자의 주체 의식이 약화되고 업무 혁신 능력이 저해될 수 있다.125)

 

68. 인공 지능은 이전에 인간이 수행했던 일부 직업에 대한 수요를 없애고 있다. 인공 지능이 인간 노동자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데에 사용되면, “많은 이의 빈곤을 대가로 소수가 불균형하게 혜택을 누릴 위험이 실제로”126) 있다. 더욱이 인공 지능이 더욱 강력해짐에 따라 인간 노동은 경제 분야에서 그 가치를 잃을 위험이 있다. 이것이 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논리적 귀결이다. 곧, 인간을 효율성의 노예로 사로잡고 궁극적으로 인건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경제적 산출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 모델에서는 뒤처진 이들이나 힘없는 이들, 능력이 모자란 이들이 삶에서 기회를 찾도록 돕고자 투자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127)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인공 지능처럼 강력하고 필요불가결한 도구가 그러한 패러다임을 강화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인공 지능을 그러한 패러다임의 확산을 가로막는 방벽으로 삼아야 한다.”128)

 

69. “사물의 안배는 인간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129)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노동은 단순히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필요와 지성적, 도덕적, 정신적, 종교적 생활의 요구를 다 고려하는 …… 전인에 대한 봉사”130)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노동이 “일용할 양식을 얻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핵심적인 차원”이고 “개인적 성장, 건강한 관계 맺음, 자기표현, 은사 교환의 수단”임을 인식한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세상의 발전과 궁극적으로 민중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한 공동 책임을 느끼게 된다.”131)

 

70. 노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이기에, “인간의 노동을 점점 기술 발전으로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다.”132) 오히려 기술 발전은 인간 노동을 증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공 지능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인공 지능이 창의성을 저해하거나 노동자를 단순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기술이 우리 일터로 더욱 깊이 파고들고 있기에, 국제 사회는 노동자의 존엄에 대한 존중,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경제적 안녕을 위한 고용의 중요성, 고용 안정과 공정 임금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133)

 

인공 지능과 보건

 

71. 하느님의 치유 활동에 참여하는 의료 종사자들은 “인간 생명의 수호자이자 봉사자”134)가 될 소명과 책임을 지닌다. 이러한 까닭에, 의료직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인정하는 “내재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윤리적 차원”을 지닌다. 이 선서를 통하여 의사와 의료 종사자는 “인간 생명과 그 신성함을 절대적으로 존중”135)하겠다고 다짐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을 따라 “배척의 사회가 건설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고 회복시켜 공동선을 이루게 하는”136) 사람들을 통하여 이러한 다짐이 실현된다.

 

72.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공 지능은 의료 분야에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인의 진단 업무 지원,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 증진, 새로운 치료법 제공, 고립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확대 등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술은 의료인들이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베풀도록 부름받은 자질인 “함께 아파하고 사랑으로 곁에 있어 주는”137) 자질을 기를 수 있게 해 준다.

 

73. 그러나 인공 지능이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데 사용된다면, 곧 환자가 인간이 아닌 기계와 상호 작용하게 된다면,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 구조는 중앙집권적이고 비인격적이며 불공정한 체제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은,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장려하기는커녕 흔히 질병에 수반되는 외로움을 더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특히 “사람이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는”138) 문화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공 지능의 이러한 오용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74. 환자의 안녕과 그의 생명에 관련된 결정의 책임이 의료직의 핵심이다. 이러한 책임의 요구에 따라, 의료진은 자신의 보살핌에 맡겨진 환자에 대하여 모든 능력과 지성을 발휘하여 신중하고 윤리적인 선택을 내리고 환자가 지니는 불가침의 존엄성과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의 필요성을 늘 존중하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환자 치료에 관한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는 언제나 인간에게 있고, 결코 인공 지능에 위임되어서는 안 된다.139)

 

75. 더욱이, 주로 경제적 척도나 효율성의 지표에 기반하여 누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인공 지능을 사용하는 것은 거부해야 하는, 특히 문제 되는 “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사례이다.140) 실제로 “자원 최적화란 윤리적이고 형제적인 방식으로 자원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141) 또한 의료 분야에서 인공 지능 도구들은 “각종 형태의 편견과 차별에 특히 노출된다. 체계의 오류가 쉽게 배가되고, 개별 사례의 불공정만이 아니라 도미노 효과 때문에 실제로 사회적 불평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142)

 

76. 인공 지능을 의료 분야에 통합시키면, 의료 접근성에 대한 기존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위험도 있다. 의료가 점점 더 예방을 지향하고 생활양식에 기반한 접근법을 지향함에 따라, 인공 지능 기반 해결책은 의도치 않게, 이미 충분히 의료 자원에 접근하고 양질의 영양을 섭취하고 있는 부유층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부자를 위한 의료” 모형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모형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첨단 예방 의료 기기와 개인 맞춤형 의료 정보의 혜택을 누리는 반면에, 그 밖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불평등을 막으려면, 의료 분야에서 인공 지능 사용이 기존의 의료 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공동선에 이바지하도록 보장하는 공평한 체계가 필요하다.

 

인공 지능과 교육

 

7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음 말씀은 오늘날에도 전적으로 유효하다. “참교육은 인간의 궁극 목적과 더불어 사회의 선익을 지향하는 인격 형성을 추구한다.”143) 이처럼 교육은 “단순히 사실과 지적 기술을 전달하는 과정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예를 들어, 학교 공동체 안에서의 공동체 생활과 관계들을 포함하여 (지적, 문화적, 영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인 교육에 이바지하는 것이다.”144)

 

78.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정신 함양을 위한 노력을 포함하지만 언제나 개인의 온전한 발전의 일부여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머릿속에 생각을 채우는 것이라는 교육관을 깨야 한다. 이는 우리가 인격이 아니라 두뇌로만 이루어진 정신, 인조인간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교육은 머리와 가슴과 손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145)

 

79. 이러한 전인 교육 활동의 중심에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필수적인 관계가 있다. 교사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교사는 근본적인 인간 자질의 모범이 되고 발견의 기쁨을 북돋운다.146) 가르치는 내용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보여 주는 관심을 통하여, 교사의 존재는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 이러한 유대는 신뢰와 상호 이해, 그리고 각 개인의 유일무이한 존엄성과 잠재력을 알아보는 능력을 길러 준다. 이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성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교사의 실체적 존재는 인공 지능이 모방할 수 없는 관계적 역동성을 형성하여 더 깊이 있는 참여와 학생의 온전한 발전을 북돋운다.

 

80.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 지능은 기회를 주는 한편 도전 과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기존의 교사-학생 관계라는 상황 안에서 신중하게 사용하고 진정한 교육 목표를 지향한다면, 인공 지능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증진하고 개인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며 학생들에게 즉각적 피드백을 제시함으로써 귀중한 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은, 개별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경우 또는 교육 자원이 부족한 경우에 특히 학습 경험을 진작시킬 수 있다.

 

81. 그럼에도 교육의 본질적 요소는 “모든 사안에서 잘 추론하고 진리로 나아가 진리를 파악하기 위한 지력”147)을 형성하고 “머리의 언어”가 “마음의 언어”와 “손의 언어”148)와 조화롭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술이 특징인 시대에 바로 이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에 “이는 더 이상 소통 수단의 ‘이용’ 문제만이 아니라, …… 소통하고 배우며 정보를 얻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는 고도의 디지털 문화 안에서 살아가는 문제이다.”149) 그러나 교육에서 인공 지능의 지나친 사용은 “수행하는 모든 노동과 직업에 그 자체로 힘과 은총을 가져다주는”150) ‘교양 있는 지성’을 기르기보다 학생들이 점점 더 기술에 의존하게끔 부추겨 그들의 독자적인 수행 능력을 저해하고 스크린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151)

 

82. 게다가,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에 도움을 주도록 설계된 인공 지능 시스템도 일부 있지만, 다른 많은 인공 지능 시스템은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거나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촉진하기는커녕 단지 해답을 제공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152) 교육은 젊은이들에게 정보를 모으고 빠르게 응답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대신에 “올바른 감각과 지성으로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유를 증진시켜야”153) 한다. 거기에서 시작하여 “인공 지능의 유형들 사용에 관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모든 연령대의 사용자가, 그러나 특히 젊은 세대의 사용자가 웹에서 수집되거나 인공 지능 체계에서 생성된 데이터와 콘텐츠 사용에 안목 있는 접근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학교, 대학교, 과학 협회는 기술 발전과 그 활용의 사회적 윤리적 측면을 파악하도록 학생들과 전문가들을 도우라는 도전 과제를 받았다.”154)

 

83.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일깨워 주셨듯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세계에서 가톨릭 대학교의 과제는 점점 더 중요하고 시급해진다.”155) 특히 가톨릭 대학교는 역사의 이 갈림길에서 희망의 거대한 실험실이 되도록 부름받고 있다. 학제적, 범학문적인 방식으로 가톨릭 대학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신중한 연구에 “현명하게 창의적으로”156) 참여하여, 과학과 현실의 다양한 분야에서 건강한 잠재력을 이끌어 내도록 도움을 주고 이러한 분야들이 언제나 우리 사회의 결속과 공동선에 분명히 봉사하는 윤리적으로 견실한 적용을 향하도록 이끌어 가며 신앙과 이성 사이의 대화에서 새로운 개척지로 나아가라고 요청받는다.

 

84. 또한 현재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은 왜곡되거나 조작된 정보를 제공하여 학생들이 부정확한 콘텐츠를 신뢰하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유념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가짜 뉴스를 정당화하고 지배 문화의 이익을 강화시킬 위험뿐만 아니라, 요컨대 교육 과정 자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157) 시간이 지나면 교육과 연구 조사에서 인공 지능의 올바른 사용과 그릇된 사용의 차이가 더욱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인공 지능은 결코 모호하지 않고 언제나 투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다.

 

인공 지능,허위 정보,딥페이크 그리고 그 남용

 

85. 인공 지능은 사람들이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거나 진리 추구를 위한 건전한 자료들로 그들을 이끄는 데에 이용된다면 인간 존엄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158)

 

86. 그러나 인공 지능이 조작된 콘텐츠와 가짜 정보를 생성할 심각한 위험도 존재한다. 진실처럼 보이기에 이는 사람들을 쉽게 오도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 지능 시스템이 진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를 내놓는 인공 지능의 ‘그럴듯한 오류의 환각’(hallucinate)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와 같은 허위 정보는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것을 모방하는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이 인공 지능 기능의 핵심이기에 이러한 위험을 완화하기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일탈과 허위 정보의 결과는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인공 지능 시스템을 제작하고 사용하는 데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은 이 시스템이 처리하고 대중에게 배포하는 정보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87. 인공 지능이 거짓 콘텐츠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면, 더 우려스러운 문제는 조작을 위하여 이를 고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속이거나 해를 끼칠 목적으로 ‘딥페이크’(deepfake) 사진과 음성, 영상과 같은 정보를 개인이나 단체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퍼뜨릴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딥페이크는 인공 지능 알고리즘이 편집하거나 만들어낸 어떤 사람에 대한 거짓된 표현이다. 딥페이크의 위험은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거나 해롭게 하는 데에 이용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미지나 동영상 자체는 인공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피해는 현실이며 “피해자의 마음에 깊은 흉터”를 남겨 그들 자신의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었다고”159) 느끼게 한다.

 

88. 더 일반적으로는, 인공 지능이 만들어낸 가짜 시청각물은 “우리가 타인과 그리고 현실과 맺는 관계를”160) 왜곡함으로써 사회의 근간을 점진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신중한 규제를 필요로 한다. 특히 인공 지능이 좌우하거나 영향을 끼친 매체를 통한 허위 정보가 정치 양극화와 사회 불안을 부채질하면서 의도치 않게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리에 무관심해지면 다양한 집단이 제각기 그들만의 ‘사실’을 만들고 그로써 사회생활의 근간이 되는 “상호 관계와 상호 의존성”161)이 약해진다. 딥페이크는 사람들이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인공 지능이 만든 가짜 콘텐츠는 보고 듣는 것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기에 양극화와 갈등만 심화될 뿐이다. 이처럼 만연한 속임수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핵심을 강타하며 사회 건설의 근간인 신뢰를 파괴한다.162)

 

89. 인공 지능이 주도하는 거짓에 맞서는 것은 산업 전문가들의 일만이 아니며 선의를 지닌 모든 이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기술이 인간 존엄성에 봉사해야 하고 그 존엄성에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면, 기술이 폭력이 아니라 무엇보다 평화를 증진해야 한다면, 인간 공동체는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는 가운데 이러한 경향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하고 선을 증진해야 한다.”163) 인공 지능이 생성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배포하는 것이 진실한지 늘 성실하게 검증하고 “인간의 품위를 손상하고 증오와 불용을 조장하며 성(性)의 아름다움과 친밀함을 훼손하고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착취하는 언어와 영상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여야”164)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 활동에 관하여 모든 사용자의 지속적인 현명함과 사려 깊은 식별이 필요하다.165)

 

인공 지능,사생활 보호 그리고 통제

 

90. 인간은 내재적으로 관계적이므로 디지털 세상에서 각 사람이 생성하는 데이터는 이와 같은 관계적 본성의 객관화된 표현으로 여길 수 있다. 데이터는 정보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날로 디지털화되는 상황에서 개개인을 지배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지식도 전한다. 더욱이, 어떤 유형의 데이터는 한 사람의 삶의 공적인 측면과 관련되는 반면에, 어떤 데이터는 개인의 내밀함, 아마도 양심까지 건드릴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사생활 보호는 개인의 내적인 삶의 경계를 보호하는 데에 그리고 부당한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을 표현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 필수적 역할을 한다. 또한 사생활 보호는 종교 자유의 수호와도 연결된다. 디지털 감시는 신자들의 삶과 신앙 표현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91. 그러하기에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166) 인간의 정당한 자유와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염두에 두고 사생활 보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권에 “사생활 보호의 권리”를 포함하였다. 모든 이가 지닌 “고귀한 존엄성”167)에 따라 사생활 보호의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나아가 교회는 개인의 좋은 평판을 들을 권리, 신체와 정신의 온전함을 보호받을 권리, 위해와 부당한 침해에서 자유로울 권리라는 맥락에서 정당한 사생활 존중의 권리를 천명해 왔다.168) 이 모두가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근본 요소이다.169)

 

92. 현재 인공 지능을 통한 데이터 처리와 분석의 발전은 소량의 정보로도 개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감지할 수 있게 하고, 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적 본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데이터 사생활 보호는 더욱더 필요하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대로이다. “다른 이들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폐쇄적이고 비관용적인 태도는 커지는 반면, 사생활의 권리가 없어질 정도로 그 거리가 줄어들거나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엿보고 감시할 수 있는 일종의 구경거리가 됩니다. 삶은 끊임없는 통제에 노출됩니다.”170)

 

93.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지키며 인공 지능을 사용하는 적법하고 올바른 방법이 있는 데도, 착취하고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만 혜택을 주려는 통제 목적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적절한 감독 기관은 투명성과 공적 책임의 보장을 위하여, 지나친 통제가 이루어질 위험을 추적 관찰하여야 한다. 이러한 감독 책임을 맡은 이들은 결코 월권을 해서는 안 되며, 그 권한은 언제나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의 필수 기반인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증진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

 

94. 나아가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 존중으로 우리는 일련의 데이터를 통하여 개인의 고유성을 확인하는 일을 반대하여야”171) 한다. 인공 지능을 사용하여 개인이나 집단을 그 행동이나 특징, 역사에 기초하여 평가하는 경우, 곧 ‘소셜 점수화’(Social scoring: 역자 주 – 소셜 미디어를 포함하여 개인의 온라인 활동으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를 숫자로 나타내는 것)로 알려진 관행에서 특히 그래야 한다. “사회적, 경제적 의사 결정에서 우리는 개개인과 그들의 특성, 과거 행동에 관하여 흔히 비윤리적 방식으로 취합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에 판단을 대신하도록 맡기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으로 오염될 수 있다. 더욱이 개인의 과거 행동이 변화의 기회, 성장의 기회, 사회에 이바지할 기회를 박탈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제약하거나 조건을 달도록 허용할 수 없고, 연민과 자비와 용서, 특히 개인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없애버리도록 허용할 수도 없다.”172)

 

인공 지능 그리고 우리 공동의 집의 보호

 

95. 우리가 우리 ‘공동의 집’과 맺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인공 지능을 적용할 수 있는 유망한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극단적 기후 현상의 예측을 위한 모형을 수립하고 그 영향을 줄이기 위한 기술 공학 해법을 제안하며 구호 활동을 관리하고 인구 이동을 예측하는 것이다.173) 또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원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며 공중 보건 비상 사태를 대비한 조기 경보 체계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모든 발전이 기후 관련 도전들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더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96. 동시에, 현재의 인공 지능 모형들과 이를 지원하는 하드웨어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물을 소모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늘릴 뿐 아니라 자원들을 소진한다. 이 기술이 대중적 상상에 제시되는 방식으로, 곧 물리적 세계와 유리된 무형의 영역에서 데이터가 저장되고 처리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클라우드(cloud 곧 ‘구름’이라는 뜻)174) 등의 용어로 흔히 이러한 현실이 숨겨진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물리적 세계와 분리된 천상의 영역이 아니라, 다른 모든 컴퓨터 처리 장치처럼 물리적 기계장치, 전선, 에너지에 의존한다. 인공 지능 이면에 있는 기술도 그러하다. 특히 대규모 언어 모형(Large Language Models)처럼 이러한 체계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더욱 대규모의 데이터 세트, 더욱 큰 연산 능력, 데이터 대량 저장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막대한 피해를 감안할 때, 우리 공동의 집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지속 가능한 해결책의 개발이 중요하다.

 

97.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에서 해결책을 찾는”175) 것이 중요하다. 또한 피조물에 대한 올바른 개념은 창조된 모든 것의 가치가 그저 효용성으로만 축소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대한 인간의 온전한 돌봄은 자연에서 “최대한 모든 것을 뽑아내려고”176) 시도하는 기술 지배 패러다임과, “생태 문제는 윤리적 성찰이나 커다란 변화 없이도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적용으로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발전이라는 신화”177)의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를 거부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공동의 집”178)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창조 질서를 존중하고 인간의 온전한 선익을 증진하는 더욱 전인적인 전망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인공 지능과 전쟁

 

98.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뒤 교황들의 가르침은 평화가 단지 전쟁이 없으며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평화는 “질서의 고요함”179)이다. 실제로 평화는 사람들의 선익 보호, 자유로운 의사 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존중,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자 사랑의 결실이고, 무력이나 단지 전쟁의 부재로 성취될 수 없고 무엇보다 인내로운 외교, 정의의 적극적인 증진, 연대, 온전한 인간 발전, 모든 이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통하여 건설되어야 한다.180) 그리하여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사용되는 도구는 결코 불의나 폭력, 또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여서는 안 되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민족들 그리고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181)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99. 인공 지능의 분석력은 각국의 평화 추구와 안보 보장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반면에, “인공 지능의 무기화”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셨다. “원격 제어 시스템을 통하여 군사 행동을 수행할 가능성은 이것이 야기하는 파괴에 대한 인식과 그 사용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시켜, 전쟁의 엄청난 참상을 점점 더 냉담하고 무심하게 대하게 합니다.”182) 더욱이, 자율 무기로 더 쉽게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상황은 정당방위의 최후 수단이라는 전쟁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으로,183) 잠재적으로 인간의 통제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전쟁의 수단들을 증가시키며 인권에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불안정한 군비 경쟁으로 치닫게 한다.184)

 

100. 특히, 인간의 직접적 개입 없이 대상을 식별하고 타격할 수 있는 ‘치명적 자율 무기 체계’(Lethal Autonomous Weapon Systems)는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의사 결정을 하는 고유한 인간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심각한 도덕적 우려를 불러온다.”185) 이러한 까닭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결코 어떤 기계도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선택을 내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시며 “인간의 통제가 더욱 많이 적절히 포함되도록 하는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노력”186)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무기 개발을 재고하고 그 사용을 금지할 것을 시급히 요청하셨다.

 

101. 정밀한 자율 살상이 가능한 기계에서 대량 파괴가 가능한 기계로 진행되는 간격이 짧기에, 일부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이 기술이 온 지역의 생존 또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잠재력을 통하여 ‘실존적 위험’을 제기한다는 우려를 밝혔다. 어린이까지도 포함하여 “많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타격을 끼치는 통제 불가능한 파괴력을”187) 전쟁에 부여하는 그러한 기술에 대한 오랜 우려를 반영하여, 그 위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신으로 전쟁을 검토”188)하라는 ‘사목 헌장’의 호소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102. 인공 지능의 이론상의 위험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욱 시급하고 당면한 우려는 악의를 품은 개인들이 이 기술을 어떻게 오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189) 인공 지능은 다른 도구와 마찬가지로 인간 힘의 연장이며 미래의 그 능력은 예측할 수 없지만, 인간이 과거에 한 행동들은 분명한 경종을 울린다. 인류 역사 안에서 자행된 잔혹 행위들은 인공 지능의 잠재적 남용에 관하여 깊은 염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103.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는 지금 전례 없는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도 있고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190) 이러한 전망에서,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되새겨 준다.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지성을 사물의 긍정적 발전에 쓸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락과 상호 파괴”191)를 향하도록 쓸 수도 있다. 인류가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192)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본질적으로 위협하는 모든 기술 애플리케이션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다. 인공 지능의 이용, 특히 군사 방어용 애플리케이션이 언제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공동선에 봉사할 수 있게 하는 신중한 식별이 이러한 노력에 수반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신성함이 존중될 수 있도록, 군사용 인공 지능의 개발과 사용은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검증 대상이 되어야 한다.193)

 

인공 지능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

 

104. 기술은 전 세계 자원을 관리하고 개발하는 데에 탁월한 도구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자원들의 통제권이 점점 인류에게서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 일부 과학자와 미래학자 집단에서는, 인간 지성에 필적하거나 이를 능가하여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가져올지도 모를 가상의 인공 지능 형태인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잠재력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인공 일반 지능이 초인적 능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동시에, 사회가 초월적인 것들과의 결합에서 멀어지면서 어떤 이들은 하느님과의 친교에서만 참으로 충족될 수 있는 갈망인 의미나 충만함의 추구를 인공 지능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194)

 

105. 그러나 사람 손이 만든 것으로 하느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추정은 우상 숭배로서,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경고하는 것이다(탈출 20,4; 32,1-5; 34,17 참조). 게다가 인공 지능은 전통적인 우상 곧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시편 115[113],5-6) 우상들과는 달리 ‘말’을 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기에(묵시 13,15 참조) 더더욱 유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여야 하는 핵심은 인공 지능은 다만 인간 면모의 희미한 반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곧 인공 지능은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고 인간이 생산한 자료로 훈련되며 인간의 입력에 반응하고 인간의 노동을 통하여 지탱되는 것이다. 인공 지능은 인간 삶 특유의 역량을 많이 가질 수 없고 오류도 지닌다. 따라서 인류가 자신의 존재와 책임을 나눌 대상으로서 인공 지능을 그 자체보다 위대한 ‘타자’로 여기고 의존해 버리면 이를 하느님의 대체물로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것은 인공 지능이 아닌 인류 자신이며, 이렇게 해서 인류는 자기 작품의 노예가 될 수 있다.195)

 

106. 인공 지능은 인류에게 봉사하고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는 한편, 여전히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사도 17,29) 인간 손의 산물이다. 여기에 결코 부당한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지혜서는 분명히 말한다. “그것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숨을 빌려 사는 자가 빚은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도 자기와 비슷한 신을 빚을 능력이 없습니다. 죽어야 할 인간이 사악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죽은 것뿐입니다. 자기가 경배하는 것들보다 그 자신이 더 낫습니다. 그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러하지 못합니다”(지혜 15,16-17).

 

107. 그러나 인간은 “그 내면성으로 만물을 초월한다. 마음속으로 돌아갈 때 이 깊은 내면성을 찾는 것이고, 거기에서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기다리고 계시며, 바로 하느님의 눈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196)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기 이해와 다른 이에 대한 개방성이 이루는 신비로운 결합을, 곧 한 개인의 고유함을 마주하는 것과 자신을 다른 이에게 내주고자 하는 의지가 이루는 신비로운 결합을”197) 저마다 마음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신다. 따라서 “주님 앞에 공경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우리의 또 다른 힘과 열정 그리고 우리의 온 인격을 형성”198)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영원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로 대하신다.”199)

VI. 최종 성찰

108.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기술 발전이 제기한 다양한 도전을 고려하시어, 기술이 가져오는 가능성의 증가에 비례하는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200)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시며 “인간의 능력이 커질수록 …… 인간의 책임도 확대된다.”201)는 사실을 인식하셨다.

 

109. 한편 다음과 같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진보의 맥락에서 볼 때 인간이 인간으로서 정말 더 나아지는가? 말하자면 영성적으로 더욱 성숙하며, 자기 인간성의 품위를 더욱 의식하며, 더 책임감이 생기며, 타인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빈궁하고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을 열며, 주려는 마음과 모든 이를 도우려는 마음이 더 생기는가?”202)

 

110. 그러하기에 특정 맥락에서 인공 지능의 사용이 인간 존엄성, 개인의 소명, 공동선을 증진하는지 판단하려면, 각각의 인공 지능 애플리케이션을 평가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여러 기술과 마찬가지로, 인공 지능의 다양한 활용의 효과는 언제나 시작 단계부터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애플리케이션과 그 사회적 영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수록,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차원에서 적절히 이에 대응하여야 한다.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한 인공 지능 사용을 보장하려면, 개인 사용자, 가정, 시민 사회, 기업, 기관, 정부, 국제기구가 저마다 고유한 차원에서 활약하여야 한다.

 

111. 오늘날 공동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기회는 인공 지능을 관계적 지능의 틀 안에서 숙고하는 데에 있다. 관계적 지능은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하고 다른 이들의 온전한 행복 증진을 위한 우리의 공동 책임을 강조한다. 20세기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기계의 탓으로 돌리지만, “이러한 행위는 다만 인간을 모욕하는 것일 뿐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 기계로의 책임 전가는 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203) 인간만이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고, 기술 사회의 도전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에 맞서려면 “영적 감수성의 강화가 요구된다.”204)

 

112. 또 다른 고려 사항은 모든 인간적인 것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라는 호소이다. 이는 인공 지능의 세계 무대 등장으로 촉발되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가톨릭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위험은 기계의 증가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기계가 줄 수 있는 것 외에는 바라지 않는 습관을 들인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는 것이다.”205) 이러한 도전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급속한 디지털화에 따라, 계산할 수 있는 공식으로 양적 환산이 불가능한 삶의 측면들을 제쳐두고 잊어버리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디지털 환원주의”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은 인간 지성의 풍요로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을 보완하는 도구로만 사용되어야 한다.206) 계산을 초월하는 그와 같은 인간 삶의 측면을 증진하는 것은 “닫힌 문 아래 틈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안개처럼 알게 모르게 기술 문명 한가운데 자리 잡는” 듯한 “참된 인류애”207)의 보존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참다운 지혜

 

113. 오늘날, 과거 세대를 경외감으로 가득 채우던 세상의 방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식의 진보가 인간적 영적 불모지가 되지 않게 하려면, 단순한 데이터 축적을 넘어 참다운 지혜를 얻고자 노력하여야 한다.208)

 

114. 이러한 지혜는, 인공 지능이 제기한 심오한 질문과 윤리적 도전을 다루기 위하여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영적 관점을 갖추어야만, 마음의 지혜를 회복하여야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새로움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209) 이와 같은 ‘마음의 지혜’는 “우리가 전체와 부분, 우리의 결정과 그 결과……를 한데 통합할 수 있게 하는 덕(德)이다.” “이러한 지혜는 기계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를 찾는 이들이 쉽게 발견하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낸다. 마음의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며,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닌다(지혜 6,12-16 참조).”210)

 

115. 인공 지능이 특징인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성령의 은총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관계와 상황과 사건을 이해하며 그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211) 해 주신다.

 

116. “한 사람의 완덕은 그가 지닌 정보나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로 가늠”212)되기에, “가장 작은 형제자매들과 취약한 이들,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을 포용”하는 데에 인공 지능을 적용하는 방식이 “인류애의 참된 척도가 될 것이다.”213) ‘마음의 지혜’는 이 기술을 인간중심적으로 사용하도록 비추고 이끌어, 공동선을 증진하고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며 진리 추구와 온전한 인간 발전을 북돋우며 인간의 연대와 형제애를 증진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인류를 그 궁극적 목표인 하느님과 이루는 복되고 완전한 친교로 이끌 수 있다.214)

 

117. 지혜의 관점에서, 믿는 이들은 이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참된 전망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215) 이러한 행동에는, 기술 진보가 하느님의 창조 계획의 일부라는 이해, 곧 진리와 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향하여 질서 짓도록 우리가 부름받은 활동이라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5년 1월 14일, 아래에 서명한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의 장관과 차관에게 허락하신 알현에서 이 공지를 승인하시고 그 발표를 명하셨다.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문화교육부에서
2025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교리부서 차관 아르만도 마테오 몬시뇰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조제 톨렌티누 드 멘돈사 추기경
문화부서 차관 폴 티거 주교

 

 

2025년 1월 14일 알현에서
프란치스코

 

1)『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199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판(2008), 378항;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965.12.7., 3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AAS), 58(1966), 1052-1053면.

 

2) 프란치스코,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총회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20.2.28.,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112(2020), 307면;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청 부서들에 한 성탄 인사, 2019.12.21., AAS 112(2020), 43면.

 

3) 프란치스코,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2024.1.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0호(2024)., 86면,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2024.1.24., 8면 참조.

 

4)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3항; 사목 헌장, 35항 참조.

 

5) J. McCarthy, et al., A Proposal for the Dartmouth Summer Research Project on Artificial Intelligence, 1955.8.31., http://www-formal.stanford.edu/jmc/history/dartmouth/dartmouth.html (접속 일자: 2024.10.21.).

 

6) 프란치스코,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24.1.1., 2-3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3.12.14., 2면 참조.

 

7) 이 문서에서 인공 지능의 결과물이나 작업 과정을 묘사하는 용어들은 그 작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기계를 인격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8) 프란치스코, 풀리아 보르고 에냐치아 지역에서 열린 인공 지능에 관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2024.6.14., 2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3.12.14., 2면;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참조.

 

9) 여기에서, ‘초(超)인본주의자’와 ‘탈(脫)인본주의자’들의 주요한 입장을 알 수 있다. ‘초(超)인본주의자’는 기술적 진보가 인간이 자기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고 그 신체적, 인지적 능력 모두를 향상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탈(脫)인본주의자’는 그러한 진보가 종국에는 인류가 더 이상 진정 ‘인간’으로 간주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정체성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견해는 모두, 인간의 몸을 인간 정체성의 온전한 부분이며 충만한 실현의 요청이라기보다는 장애물로 여기는, 인간의 육체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에 기초한다. 그러나 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온당한 이해와 상반된다. 교회는 참된 과학적 진보를 지지하면서도, 인간 존엄성이 “육신과 영혼을 분리할 수 없는 인간”에 뿌리내려 있음을 확언한다. 그러하기에 “존엄성은 …… 인간의 몸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몸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인간이 지닌 하느님의 모상성에 참여한다”(신앙교리부 선언, 「무한한 존엄성」[Dignitas Infinita], 2024.4.8., 18항).

 

10) 이러한 접근은 기능주의적 관점, 곧 인간의 정신을 그 기능으로 축소시키며 그 기능들이 물리적 수학적 관점에서 온전히 계량화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미래의 범용 인공 지능이 참으로 지성을 지녔다고 보일지라도 그 본질상 기능주의는 여전할 것이다.

 

11) A.M.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59, 1950, 443-460.

 

12) ‘사고하기’가 기계에 적용된다면, 이것이 비판적 사고보다는 계산적 사고를 가리킨다는 점을 반드시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계들이 논리적 사고를 하면서 작동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계산적 논리에 한정된다는 점이 특정되어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사고는 그 본성상 프로그래밍을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넘는 창의적 과정이다.

 

13) 이해를 형성하는 언어의 기초적인 역할에 대하여 - M. Heidegger, Überden Humanismus,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49 (영문 번역본 “Letter on Humanism,” in Basic Writings: Martin Heidegger, Routledge, London ‒ New York 2010, 141-182) 참조.

 

14) 이러한 인간학적 신학적 토대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위하여, AI Research Group of the Centre for Digital Culture of the Dicastery for Culture and Education, Encountering Artificial Intelligence: Ethical and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s (Theological Investigations of Artificial Intelligence 1), M.J. Gaudet, N. Herzfeld, P. Scherz, J.J. Wales, eds., Journal of Moral Theology, Pickwick, Eugene 2024, 43-144 참조.

 

15)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Metaphysics), I.1, 980 a 21.

 

16) 성 아우구스티노, 「창세기 문자적 해설」 3(De Genesi ad Litteram) III, 20, 30, 『라틴 교부 총서』 (Patrologia Latina:PL) 34, 292 참조: “인간은 그 [능력]과 연관되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이 [능력]은, 이성 그 자체이거나, ‘정신’ 또는 ‘지능’이다. 이 능력은 더 적절한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 「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 54, 3: PL 36, 629: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인간은 지성을 지닌다는 바로 그 사실로 자기들이 동물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거듭 말한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은 움직일 수 있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완벽하며, 인간의 합당하고 자연적인 활동은 사고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고함으로써 사물을 추론하고 “사유를 통하여 실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을 정신에 받아들인다”(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2」[Summa Contra Gentiles], 76).

 

17) 사목 헌장, 15항 참조.

 

18)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II-II, q.49, a.5, ad. 3; 참조: 『신학대전』, I, q.79; II-II, q.47, a.3; II-II, q.49, a.2.;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인지에 대한 고전적 중세적 구분 요소들을 반영하는 현대적 관점에 대해서는, D.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New York 2011 참조.

 

19) 『신학대전』, I, q.76, a.1, resp.

 

20) 리옹의 성 이레네오,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 V, 6, 1, 『그리스 교부 총서』(Patrologia Graeca: PG) 7(2), 1136-1138 참조.

 

21) 「무한한 존엄성」, 9항; 참조: 프란치스코,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020.10.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제1판), 213항: “지성은 성찰과 경험과 대화를 통하여 사물들의 실재를 통찰할 수 있고, 그 실재 안에는 이를 초월하는 어떤 보편적 도덕적 요구들의 기초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22) 교황청 신앙교리성, 「복음화의 일부 측면에 관한 교리 공지」(Doctrinal Note on Some Aspects of Evangelization), 2007.12.3., 4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8호(2008), 85면 참조.

 

23) 『가톨릭 교회 교리서』, 365항; 참조: 『신학대전』, I, q.75, a.4, resp.

 

24) 사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육체 안에 있는 존재로 여긴다. 따라서 인간은 육체 밖에서는 생각될 수 없다”(교황청 성서위원회, 「성서 인간학」[Che cosa è l’uomo?(Sal 8,5). Un itinerario di antropologia biblica], 2019.9.3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제1판], 19항); 참조: 20-21.43-44.48항.

 

25) 사목 헌장, 22항; 참조: 교황청 신앙교리성, 훈령 「인간의 존엄」(Dignitas Personae), 2008.9.8., 7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2호(2020), 170면: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육체성을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충만히 보여 주셨다.”

 

26) 「대이교도대전」, II, 81.

 

27) 사목 헌장, 15항.

 

28) 『신학대전』, I, q.89, a.1, resp.: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은 [영혼의]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 이러한 이유로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어 있는데, 영혼이 존재를 가지고 그 본성에 합당하게 작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29) 사목 헌장, 14항; 참조: 「무한한 존엄성」, 18항.

 

30)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친교와 봉사: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Communion and Stewardship: Human Person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2004, 54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207면;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7항.

 

31) 「인간의 존엄」, 5.8항; 「무한한 존엄성」, 15.24.53-54항 참조.

 

32)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6항; 참조: 221항.

 

33) 「무한한 존엄성」, 13.26-27항 참조.

 

34) 교황청 신앙교리성, 훈령 「진리의 선물」(Donum Veritatis), 1990.5.24., 『회보』, 62호(1990), 6항, AAS 82(1990), 1552면; 참조: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1993.8.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판(2009), 109항, AAS 85(1993), 1219면; 위 디오니시우스, 「하느님의 이름들」(De Divinis Nominibus), VII, 2: PG 3, 868B-C: “인간의 영혼 또한 이성을 지니고, 그것을 통하여 담론 안에서 사물의 진리를 중심으로 순환한다. …… 많은 것을 하나로 집중시킬 수 있는 인간의 영혼도 고유하게 가능한 한 천사들과 유사한 지성을 지니기에 합당하다.”

 

35)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1998.9.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1판(1999), 3항, AAS 91(1999), 7면.

 

36) 사목 헌장, 15항.

 

37) 「신앙과 이성」, 42항; 참조: 「모든 형제들」, 208항: “인간의 지성이 당장의 편의를 초월하여 어떤 변함 없는 진리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 …… 이 진리들은 우리보다 먼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이성은 인간 본성을 자세히 살피면서, 그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보편적 가치들을 발견한다.”; 184항.

 

38) 블레즈 파스칼, 「팡세」(Pensées), 브랑슈비크 편, 267항: “이성의 마지막 행보는 이성을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영문 번역판 「파스칼의 팡세」,[Pascal’s Pensées] 더턴 출판사, 뉴욕, 1958, 77.).

 

39) 사목 헌장, 15항; 참조: 「복음화의 일부 측면에 관한 교리 공지」, 4항.

 

40) 어의적 능력은 인간이 모든 형태의 소통에서 메시지들을 그 물질적 경험적 구조(컴퓨터 코드 등)를 고려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 지성은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관계와 상황과 사건을 이해하며 그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지혜가 된다. 창의력은, 주로 현실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제공하여 새로운 내용이나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 인격적 주체성이 있어야 이 두 가지 능력 모두 온전히 실현된다.

 

4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 1965.12.7., 3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647면.

 

42) 「모든 형제들」, 184항 참조: “진리에 대한 헌신이 동반될 때에 애덕은 개인적 감정을 뛰어넘으며 …… 애덕과 진리의 밀접한 관계는 애덕의 보편성을 증진하며 ‘관계가 결여된 좁은 영역에 갇혀 버리지’ 않게 애덕을 보존한다. …… 진리에 열려 있는 애덕은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여유를 빼앗아 버리는 신앙주의’로부터 보호된다.”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6.2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제1판), 2-4항에서 재인용, AAS 101(2009), 642-643면.

 

43) 「친교와 봉사」, 7항 참조.

 

44) 「신앙과 이성」, 13항 수정 번역; 참조: 「복음화의 일부 측면에 관한 교리 공지」, 4항.

 

45) 「신앙과 이성」, 13항.

 

46) 성 보나벤투라, 「제2명제집」, dist.1, p.2, a.2, q.1; 『가톨릭 교회 교리서』 293항에서 인용; 참조: 294항.

 

47) 『가톨릭 교회 교리서』, 295.299.302항 참조: 성 보나벤투라는 우주를, 만물에게 존재를 부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 곧 “그 창조주를 반영하고, 드러내며, 묘사하는 책”에 비유한다(「신학요강」[Breviloquium], II, 12, 1); 릴의 알라누스, 「그리스도의 육화」(De Incarnatione Christi), PL 210, 579a 참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우리에게 책, 이미지, 거울과 같다.”

 

48) 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Fratelli Tutti), 2015.5.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제2판), 67항, AAS 107(2015), 874면;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9.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제2판), 6항, AAS 73(1981), 589-592면; 「친교와 봉사」, 55항 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세상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가시적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일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린다. …… 지배자로서 인간의 지위는 사실상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지배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봉사의 한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다”(55항).

 

49) 「진리의 광채」, 38-39항 참조.

 

50) 사목 헌장, 33-34항; 이러한 생각은 창조 이야기에도 반영되어 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피조물을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창세 2,19). 이는 인간 지성이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돌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를 보여 주는 행위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창세기 강해」(Homiliae in Genesim), XVI, 17-21, PG 53, 116-117면 참조.

 

51) 『가톨릭 교회 교리서』, 301항 참조.

 

52) 『가톨릭 교회 교리서』, 302항 참조.

 

53) 「신학요강」, 2.12.1; 참조: 「신학요강」, 2.11.2.

 

54)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11.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제2판), 236항, AAS 105(2023), 1115면; 프란치스코, 교황청 문화교육부 주관 대학교 사목 종사자 회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23.11.24.,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3.11.24., 7면 참조.

 

55) 존 헨리 뉴먼, 「대학의 이념: 그 정의와 설명」(The Idea of a University Defined and Illustrated), 강연 5.1, 바실 몬테규 피커링, 런던 1873, 99-100; 프란치스코, 교황청립 대학교와 대학 학장, 교수, 학생, 직원들에게 한 연설, 2023.2.25., AAS 115(2023), 316면 참조.

 

56) 프란치스코, 수공업과 중소기업 전국 협회 회원들에게 한 연설, 2024.11.15.,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4.11.15., 8면.

 

57)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사랑하는 아마존」(Querida Amazonia), 2020.2.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제1판), 41항, AAS 112(2020), 246면; 「찬미받으소서」, 146항 참조.

 

58) 「찬미받으소서」, 47항; 참조: 프란치스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 2024.10.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제1판), 17-24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4.10.24., 5면; 「모든 형제들」, 47-50항.

 

5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20항.

 

60) Claudel, Conversation sur Jean Racine, Gallimard, Paris 1956, 32: “L’intelligence n’est rien sans la délectation.”; 참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3항: “지성과 의지는 진리들을 감지하고 음미하며 더욱 큰 선에 봉사하게 된다.”

  1. 61) 단테, 『신곡-천국 편』(Divina Comedia - Paradiso), 제30곡: “luce intellettüal, piena d’amore; / amor di vero ben, piendi letizia; / letizia che trascende ogne dolzore” (영문 번역판 『신곡-천국 편』[The Divine Comedy of Dante Alighieri], 찰스 E. 노턴 역, 휴턴 미플린 출판사, 보스톤, 1920, 232).

62) 종교 자유 선언, 3항: “하느님께서 당신 지혜와 사랑의 계획으로 온 우주와 인간 사회에 질서를 세우시고 이를 이끄시고 다스리시는 영원하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하느님 법을 인간 생활의 최고 규범 ……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의 인자하신 섭리로 불변의 진리를 더욱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당신의 이 법에 인간을 참여시키셨다.”; 사목 헌장, 16항 참조.

 

63)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하느님의 아드님」(Dei Filius), 제4장,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7(제1판), 3016항 참조.

 

64) 「찬미받으소서」, 110항.

 

65) 「찬미받으소서」, 110항; 참조: 「모든 형제들」, 204항.

 

66)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1991.5.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제2판), 11항, AAS 83(1991), 807면: “하느님께서는 인간 안에 자신의 모습과 유사성을 새겨주셨으며(창세 1,26 참조), …… 그분은 인간에게 비교할 수 없는 품위를 부여하셨다. 실제로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는 권리 외에 인간이 하는 여하한 활동과도 상관없이, 인간 자신의 본질 자체에서 오는 권리들이 있는 것이다.”;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67) 「무한한 존엄성」, 8-9항; 「인간의 존엄」, 22항 참조.

 

68)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총회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69)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70) 이러한 의미에서 ‘인공 지능’은 이 기술을 가리키기 위한 기술 용어로 이해되고, 이러한 표현은 그 애플리케이션들뿐만 아니라 해당 학문 분야를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된다.

 

71) 사목 헌장, 34-35항; 「백주년」, 51항 참조.

 

72) 예컨대, 과학적 탐구에 대한 대 알베르토의 격려(「광물론」[De Mineralibus], II, 2, 1)와 기계공학에 대한 위그 드 생 빅토르의 긍정적인 평가(「학습의 기초」[Didascalicon], I, 9) 참조. 과학 연구와 기술 탐구에 헌신한 교회의 수많은 인물에 속하는 이 저술가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과학이 우리 시대의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고 인간을 해치거나 심지어는 파괴하는 데에 오용되지 않는다면 신앙과 과학은 애덕 안에서 일치될 수 있다”(프란치스코, 조르주 르메트르를 기념하는 바티칸 천체관측국 제2차 학술대회 참석자에게 한 연설, 2024.6.20.,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4.6.20., 20면).; 사목 헌장, 36항; 「신앙과 이성」, 2항 참조.

 

73) 『가톨릭 교회 교리서』, 378항.

 

74) 사목 헌장, 34항 참조.

 

75) 사목 헌장, 35항 참조.

 

76) 「찬미받으소서」, 102항.

 

77) 「찬미받으소서」, 105항; 「모든 형제들」, 27항; 「진리 안의 사랑」, 23항 참조.

 

78) 「무한한 존엄성」, 38-39.47항; 「인간의 존엄」, 여러 곳 참조.

 

79) 사목 헌장, 35항;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3항.

 

80)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81)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49항 참조: “인간은 자유로써 도덕적 주체가 된다. 인간이 의도적인 행동을 할 때, 그는 이를테면 그 행동의 주인이 된다.”

 

82) 사목 헌장, 16항;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76항.

 

8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77항.

 

84)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79-1781항; 프란치스코,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23.3.27., AAS 115(2023), 463면 참조. 이 연설에서 교황 성하께서는 “기술이 인간을 중심으로 삼고 윤리적 기틀 위에서 선(善)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격려하셨다.

 

85) 「모든 형제들」, 166항; 프란치스코, 교황청립 과학원 전체 회의에서 한 연설, 2024.9.23.,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4.9.23., 10면; 각 기술 응용 프로그램이 생성되는 개별 목적(Zweck)을 알려 주는 더 넓은 목표(Ziel)를 선택하는 데에서 인간 행위자가 하는 역할에 관해서는, F. Dessauer, Streit um die Technik, Herder-Bücherei, Freiburg i. Br. 1959, 70-71 참조.

 

86)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기술은 목적을 위하여 생겨났고,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기술은 언제나 사회관계의 질서와 권력 구조를 나타냄으로써, 일부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다른 행동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더 분명히 말해서, 기술이 지니는 이러한 구성적 권력 차원은 언제나 이 기술을 발명하고 개발한 사람들의 세계관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87)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총회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88)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89)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참조: 「모든 형제들」, 212-213항.

 

90) 「노동하는 인간」, 5항;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91)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독자적으로 선택하는 법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들의 경이로움에 직면하여, 우리는 의사 결정이 …… 언제나 인간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삶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빼앗고 기계의 선택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면, 우리는 인류에게 희망 없는 미래를 선고해 버리는 것입니다.”

 

92)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93) 이 문서에서 ‘편향성’이라는 말은, ‘알고리즘 편향성’(algorithmic bias, 의도치 않게 특정 집단에 대하여 균형 잡히지 않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의 체계적이고 일관된 오류) 또는 ‘학습 편향’(learning bias, 편향된 정보군을 학습시키는 결과 초래)을 의미하고, 신경망의 ‘편향 벡터’(bias vector, 정보에 더 정확하게 맞추기 위하여 ‘신경 세포들’의 출력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는 매개 변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94)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참조. 이 연설에서 교황 성하께서는 “발전 과정이 포용, 투명성, 안전, 평등, 사생활 보호, 신뢰와 같은 가치들을 존중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하셨고, 또한 “이러한 기술들이 진정한 발전을 촉진하여 더 나은 세상과 통합적인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이를 규제하려는 국제 단체들의 노력”을 환영하셨다.

 

95) 프란치스코, 막스 플랑크회 대표단에게 한 연설, 2023.2.23.,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3.2.23., 8면.

 

96) 사목 헌장, 26항.

 

97) 프란치스코, ‘디지털 시대의 공동선’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9.9.27., AAS 111(2019), 1571.

 

98)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가톨릭 관점에서 인공 지능이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들에 관한 더 많은 논의에 대해서는, 교황청 문화교육부 디지털 문화 센터 인공 지능 연구 그룹, 「인공 지능과의 만남: 윤리적 인간학적 조사 연구」(Encountering Artificial Intelligence: Ethical and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s)(인공 지능에 대한 신학 연구 1), M.J. Gaudet, N. Herzfeld, P. Scherz, J.J. Wales, eds, Journal of Moral Theology, Pickwick, Eugene 2024, 147-253 참조.

 

99) ‘견고하고 안정된 사회 윤리’를 지향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대회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형제들」, 211-214항 참조.

 

100)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항.

 

101)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 참조: 사목 헌장, 26항.

 

102) 「찬미받으소서」, 112항 참조.

 

103)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104)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인터넷 윤리」(Ethics in Internet), 2002.2.22., 10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호(2022), 174면 참조.

 

105) 프란치스코, 세계주교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Christus Vivit), 2019.3.25., 89항(세계주교시노드 제15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24항 인용), AAS 111(2019), 413-414면; 참조: 베네딕토 16세, 자연 도덕법에 대한 국제 대회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17.2.12., AAS 99(2007), 245면.

 

106) 「찬미받으소서」, 105-114항;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Laudate Deum), 2023.1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3(제1판), 20-33항, AAS 115(2023), 1047-1050면 참조.

 

107) 「찬미받으소서」, 105항; 참조: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20-21항.

 

108)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총회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참조.

 

109)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항.

 

110) 「찬미받으소서」, 112항.

 

111) 「모든 형제들」, 101.103.111.115.167항 참조.

 

112) 사목 헌장, 26항; 참조: 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5.1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제1판), 28항, 『레오 13세 교황의 문헌』(Acta Leonis XIII), 11(1892), 123면.

 

113) 사목 헌장, 12항.

 

114)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 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판(2006), 149항 참조.

 

115) 종교 자유 선언, 3항; 참조: 「모든 형제들」, 50항.

 

116) 「모든 형제들」, 50항.

 

117) 「찬미받으소서」, 47항; 참조: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8-89항.

 

118) 「복음의 기쁨」, 88항 참조.

 

119) 「모든 형제들」, 47항.

 

120)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121) 「모든 형제들」, 50항 참조.

 

122) E. Stein, Zum Problem der Einfühlung, Buchdruckerei des Waisenhauses, Halle 1917 참조.

 

123) 「복음의 기쁨」, 88항: “[많은 사람은] 정교한 장비를 통하여, 곧 명령에 따라 껐다 켤 수 있는 화면과 장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대인 관계를” 원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과감히 다른 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라고, 곧 그들의 육체적 현존과 만나라고 끊임없이 초대합니다. 이는 그들의 고통과 호소를 또 잘 번져 나가는 그들의 기쁨을 직접 대면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강생하신 하느님 아드님에 대한 참신앙은, 자기 증여, 공동체 소속감, 봉사, 그리고 다른 이들과 직접 만나 이루는 화해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사목 헌장, 24항 참조.

 

124) 「무한한 존엄성」, 1항 참조.

 

125) ‘디지털 시대의 공동선’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찬미받으소서」, 18항 참조.

 

126)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5항.

 

127) 「복음의 기쁨」, 209항 수정 번역.

 

128)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기술 지배 패러다임’과 연관된 인공 지능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찬미받으소서」, 106-114항 참조.

 

129) 사목 헌장, 26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12항; 참조: 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1961.5.1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제2판), 219항, AAS 53(1961), 453면.

 

130) 사목 헌장, 64항.

 

131) 「모든 형제들」, 162항; 참조: 「노동하는 인간」, 6항: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 누구나 당연히 노

동의 객관적 의미보다 주관적 의미가 더 현저하게 부각됨을 깨닫게 된다.”

 

132) 「찬미받으소서」, 128항 수정 번역; 참조: 프란치스코, 주교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2016.3.1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6(제1판), 24

항, AAS 108(2016), 319-320면.

 

133)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5항 수정 번역.

 

134)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3.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2판), 89항, AAS 87(1995), 502면.

 

135) 「생명의 복음」, 89항.

 

136) 「모든 형제들」, 67항; 프란치스코,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3.2.1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8호(2023), 86면.

 

137) 프란치스코,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4.2.1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0호(2024), 73면.

 

138) 프란치스코, ‘성좌 주재 외교 사절단에게 한 연설’, 2016.1.11., AAS 108(2016), 120면; 참조: 「모든 형제들」, 18항; 제32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139)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140) 「찬미받으소서」, 105.107항; 「모든 형제들」, 18-21항;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참조.

 

141) 프란치스코, ‘이탈리아 주교회의 자선건강위원회 주최 회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7.2.10., AAS 109(2017), 243면; 참조: 242-243면: “쓰고 버리는 문화가 만연하고 그 고통스러운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의료 분야입니다. 아픈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거나 그들의 존엄을 고려하지 않을 때, 이는 타인의 불행에 대한 예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태도를 야기합니다.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 의료 분야에 사업적 접근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적용시켜 버리면 …… 인간 존재를 버리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42)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5항.

 

14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교육의 중대성」(Gravissimum Educationis), 1965.10.28., 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621면.

 

144)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교회 대학교와 대학에서의 원격 교육 활용에 관한 훈령」(Instruction on the Use of Distance Leraning in Ecclesianstical Universities and Faculties), 2021, 2항; 참조: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1항; 프란치스코,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6.1.1., 6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7호(2018년), 58면.

 

145) 프란치스코, 세계 가톨릭 교육 사업의 발전을 위한 연구자 모임 회원들에게 한 연설, 2022.4.20., AAS 114(2022), 580면.

 

146)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12.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3판), 41항, AAS 68(1976), 31면; 바오로 6세, 교황청 평신도위원회 위

원들에게 한 연설, 1974.10.2., AAS 66(1974), 568면 참조: “[현대인이]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47) 「대학의 이념: 그 정의와 설명」, 강연 6.1.

 

148) 프란치스코, 파두아 바르바리고 대학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학생들과의 만남, 2019.3.23.,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9.3.24.; 참조: 교황청립 대학교와 대학 학장, 교수, 학생, 직원들에게 한 연설.

 

149)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6항 수정 번역; 세계주교시노드 제15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 21항 인용.

 

150) 「대학의 이념: 그 정의와 설명」, 강연 7.6.

 

151)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8항 참조.

 

152) 교육과 연구 조사에서 생성형 인공 지능(generative AI)의 이용에 관한 2023년 유네스코의 정책 자료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과 연구 조사에서 생성형 인공 지능을 이용하는 것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기초적인 수준의 사고와 기술 습득 과정을 인공 지능에게 맡기고 대신 인공 지능이 만들어낸 결과에 기초하여 더 고차원적 사고 능력에 집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쓰기는 종종 사고의 구조화와 연결된다. 생성형 인공 지능으로 …… 인간은 이제 생성형 인공 지능이 제공한 훌륭한 짜임을 갖춘 뼈대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처럼 생성형 인공 지능을 이용하여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사고하지 않는 글쓰기’라고 특징짓는다”(유네스코, 교육과 연구 조사용 생성형 인공 지능을 위한 지침[Guidelines for Generative AI in Education and Research], 2023, 37-38).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9년 저서 「인간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그와 같은 가능성을 예견하고 경고하였다. “지식(일종의 요령과 같은 지식인 노하우[know-how]의 개념에서)과 사고가 영원히 결별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진정 우리는 우리가 만든 기계보다 오히려 요령의 무력한 노예가 되어버릴 것이다”(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20182, 3).

 

153) 「사랑의 기쁨」, 262항.

 

154)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7항.

 

15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령 「교회의 심장부」(Ex Corde Ecclesiae), 1990.8.15., 7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보』 63호(1990년), 58면 수정 번역.

 

156) 프란치스코, 교황령 「진리의 기쁨」(Veritatis Gaudium), 2018.1.29., 4항 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8호(2018), 11면.

 

157)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158) 「신앙과 이성」, 3항: 예컨대, 사람들이 철학 저작들 안에 담긴 “진리를 더욱 많이 알게 …… 만들 수 있는 일련의 원천들”에 접근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다.; 참조: 4항.

 

159) 「무한한 존엄성」, 43항; 참조: 「신앙과 이성」, 61-62항.

 

160)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161) 사목 헌장, 25항; 참조: 「모든 형제들」, 여러 곳.

 

162)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9항 참조.

 

163) 「무한한 존엄성」, 62항.

 

164) 베네딕토 16세, 제43차 홍보 주일 담화, 2009.5.24.,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0호(2009), 69면,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08.1.24., 8면.

 

165) 교황청 홍보부, 「충만한 현존을 위하여: 소셜 미디어 참여에 관한 사목적 성찰」(Towards Full Presence: A Pastoral Reflection on Engagement with Social Media), 2023, 5.28., 41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9호(2024), 114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nifica), 1963.12.4., 4.8-1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323면.

 

166) 「무한한 존엄성」, 1,6,16,24항.

 

167) 사목 헌장, 26항; 참조: 「새로운 사태」, 30항, “하느님 자신이 대단한 존경심으로 다루는 인간 존엄성을 어느 누구도 부당하게 침해할 수 없다.”: 「백주년」, 9항에서 재인용.

 

168)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77.2489항; 교회법 제220조; 동방 교회법 제23조; 요한 바오로 2세,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제3차 총회에 한 연설, 1979.1.28., III, 1-2,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 2/1, 1979, 202-203면 참조.

 

169) 교황청 유엔 상임 참관인, 군축 방안과 국제 안보에 관한 주제 논의에 관한 교황청 성명, 2022.10.24. 참조: “사이버 공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사생활] 침해적인 감시에서 시민들을 보호하여 그들이 무단 접근에서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키게 해 줌으로써 국가들에게 사생활 보호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우는 것이기도 하다.”

 

170) 「모든 형제들」, 42항.

 

171)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72) ‘미네르바 대화’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173) 유엔 인공 지능 자문 기구의 2023년 「중간 보고서」는 “기후 변화 대처를 돕는 인공 지능의 초기 가능성” 목록을 확인하였다(유엔 인공 지능 자문 기구, 「중간 보고서: 인류를 위한 인공 지능의 관리」[Interim Report: Governing AI for Humanity], 2023.12.3).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데이터를 통찰로, 통찰을 실행으로 바꾸는 예측 체계와 함께 받아들인다면 인공 지능 기반 도구들은 [공해] 배출 감소를 위한 새로운 전략과 투자를 발전시키고 넷 제로에 대한 새로운 민간 부문 투자에 영향을 주며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폭넓은 기반의 사회 회복 탄력성을 구축할 수 있다.”

 

174) ‘클라우드’는 사용자들이 원격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며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물리적 서버들의 네트워크를 뜻한다.

 

175) 「찬미받으소서」, 9항.

 

176) 「찬미받으소서」, 106항.

 

177) 「찬미받으소서」, 60항.

 

178) 「찬미받으소서」, 3.13항.

 

179) 아우구스티노, 「신국론」(De Civitate Dei), 19,13, PL 41, 640.

 

180) 사목 헌장, 77-82항; 「모든 형제들」, 256-262항; 「무한한 존엄성」, 38-39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2-2317항 참조.

 

181) 사목 헌장, 78항.

 

182)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

 

183)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8-2310항 참조.

 

184) 사목 헌장, 80-81항 참조.

 

185)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 참조: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우리는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선택한 것들에 대하여 인간이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보장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달려 있습니다.”

 

186) 인공 지능에 관한 G7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 참조: 교황청 유엔 상임 참관인, 유엔 군축위원회에서 부각되는 기술에 관하여 제2작업 그룹에 보낸 교황청 성명, 2024.4.3.: “인간의

적절한 통제가 결여된 치명적인 자율 무기 체계(LAWS)의 개발과 사용은 근본적인 윤리적 우려를 제기할 것입니다. 인공 지능은 국제인도법을 따를 수 있는 도덕적 책임 주체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87) 「모든 형제들」, 258항; 참조: 사목 헌장, 80항

 

188) 사목 헌장, 80항.

 

189)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 참조. “우리는 정교한 무기가 결국 그릇된 자들의 손에 들어가, 이를테면 합법적 정부 체제의 제도들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테러리스

트들의 공격이나 개입을 조장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곧 세계는 불의한 상업 개발과 무기 거래에 일조하여 결국 어리석은 전쟁을 부추기는 신기술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

습니다.”

 

190) 요한 바오로 2세, 주교들의 희년을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 2000.10.8., 3항.

 

191) 「찬미받으소서」, 79항.

 

192) 「진리 안의 사랑」, 51항 참조.

 

193) 「무한한 존엄성」, 38-39항 참조.

 

194) 「고백록」, 1,1,1 참조.

 

195) 「사회적 관심」, 28항: “오늘날에는 단순한 재화나 서비스의 축적은, …… 인간 행복의 실현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훌륭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 컴퓨터 과학을 위시해서 과학과 기술 공학으로 제공되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혜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혜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을 온갖 형태의 예속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 인간의 처분에 맡겨진 재화와 잠재력의 중요한 모든 체제가 도덕적인 식견에 따라서 지도되고 인류의 진정한 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유도되지 않으면, 그것이 쉽사리 인간에게 대항하는 양상으로 변질되어 인간을 억압하게 된다.”; 29.37항 참조.

 

196) 사목 헌장, 14항.

 

19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8항.

 

19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27항.

 

19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25항.

 

200) 「찬미받으소서」, 105항; 참조: R. Guardini, Das Ende der Neuzeit, Würzburg 19659, 87ff.

 

201) 사목 헌장, 34항.

 

20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979.3.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제2판), 15항, AAS 71(1979), 287-288면.

 

203) N. Berdyaev, “Man and Machine,” in C. Mitcham – R. Mackey, eds., Philosophy and Technology: Readings in the Philosophical Problems of Technology, New York 19832, 212-

213.

 

204) “Man and Machine,” 210.

 

205) G. Bernanos, “La révolution de la liberté” (1944), in Id., Le Chemin de la Croix-des-Âmes, Rocher 1987, 829.

 

206) 파두아 바르바리고 대학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학생들과의 만남; 교황청립 대학교와 대학 학장, 교수, 학생, 직원들에게 한 연설 참조.

 

207) 「찬미받으소서」, 211항.

 

208) 보나벤투라, 강연집 「6일 창조의 역사」(Hexaemeron) 19,3; 「모든 형제들」, 50항 참조: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정보의 홍수는 더 큰 지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지혜는 재빠른 인터넷 검색에서 태어나는 것도 사실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자료도 아닙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진리와의 만남을 통한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209)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210)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211)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

 

2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37항.

 

213)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6항; 참조: 「찬미받으소서」, 112항;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46항.

 

214) 「찬미받으소서」, 112항 참조.

 

215) ‘디지털 시대의 공동선’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참조.

 

<원문 Dicastery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 Dicastery for Culture and Education, Not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uman Intelligence Antiqua et Nova, 2025.1.28.,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https://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documents/rc_ddf_doc_20250128_antiqua-et-nova_en.html

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documents/rc_ddf_doc_20250128_antiqua-et-nova_it.html

 

[출처 : https://www.cbck.or.kr/Notice/20250343?gb=K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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