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미사의 영성 (35) 성령 청원(Epiclesis)과 일치
“오, 예수님, 거룩해진다는 건 얼마나 쉬운지요. 선의만 조금 있으면 되니까요. 예수님은 영혼 안에서 매우 작은 선의라도 발견하시면 서둘러 당신을 영혼에게 주십니다. 그때는 영혼의 잘못도, 넘어짐도, 그 어느 것도 예수님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매우 관대하시며 아무한테도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시기까지 하는 분입니다. 성덕에 이르는 지름길은 성령의 영감에 충실히 머무는 것입니다”(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 中).
성녀 파우스티나의 이 아름다운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거룩함의 샘”(감사 기도 제2양식 참조)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거룩함에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참여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 때 바치는 성찬 기도문(감사 기도 제2양식)에는 두 군데에서 성령의 은총을 청하는 부분(Epiclesis)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봉헌한 예물(빵과 포도주)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길 청하면서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사제가 청원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의 신비여”를 노래한 후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입니다. 처음에 언급된 성령 청원은 성령께서 예물(빵과 포도주) 위에 내리길 바라는 것이라면, 두 번째 성령 청원은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내리길 바라는 모습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청하는 부분에서 그 대상은 ‘빵과 포도주’(첫 번째)와 ‘신자들’(두 번째)로 다르지만, 이 성령 청원을 통해 지향하는 의미는 서로 연결됩니다. 즉 성령을 통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고, 그 몸과 피를 받아 모시게 될 이들 또한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몸과 피)로 하나 되어 살아가게 해 달라는 청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은총 안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될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아주 중요한 은총의 내용을 발견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와의 일치”입니다. 그리스도와 참으로 일치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도 화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참된 사랑의 샘이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구원 또한 그분과 얼마나 일치하는 삶을 사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그럴 수 있을 때 성모님께 들려왔던 말씀이 언젠가 우리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2022년 11월 13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