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
(2025년 9월 28일)
이주민, 희망의 선교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세계의 모든 이는, 지속되는 전쟁과 폭력, 경제적 불안감,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그 어느 때보다도 생존에 대한 위협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존에 대한 위협이 커질수록, 세상에서 가장 먼저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고향을 떠나 피난처를 찾는 이주민과 난민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날의 풍요로움과 장밋빛 미래 전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경제 위기 속에서 마약 중독률과 자살률이 높아지며,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특히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마주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형태로 이주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결핍된 것을 찾고자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희망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넣어 주신 행복을 바라는 덕이며, 사람들의 활동을 고취시키는 갈망을 하나로 모은다.’고(1818항 참조)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믿음은 희망의 보증이며, 우리가 희망을 간직하는 것도 곧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기후 변화 등 위기의 상황과 환경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사실 실제 위기는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서 희망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으며, 이는 마치 열정 없이 고백하는 사랑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향한 ‘희망’을 간직하고 길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주민과 난민들은 그 존재만으로 ‘희망의 상징’이며 낯선 곳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희망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만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이겨 내며 희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들의 여정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는 믿음의 희망을 새롭게 체험합니다. 또한 그들의 믿음 안에서 용기를 얻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발견하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는 풍요로움을 지키고자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개인이 속한 한정된 집단만을 앞세우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풍요로움이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데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하여 우리가 모두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우리의 믿음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그 희망입니다.
한편 이주민과 난민들이 간직한 희망은 그들만의 노력으로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이웃들의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주민과 난민들의 존재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의 다른 모습으로, 당신 교회에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마음을 여는 기회로 인식되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이주민들의 희년’과 ‘선교 분야의 희년’에 맞추어 지내는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이하여, 저는 한국 사회의 모든 이주민과 난민이 저마다 삶의 터전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참된 복음 선포자요 희망의 선포자로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모두 이주민과 난민들과 이루는 만남과 나눔으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동력과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간직한 희망, 그 믿음의 씨앗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싹을 틔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은, 이 세상의 나그네이며 순례자로서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시노드 교회의 사명입니다.
2025년 9월 28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정 순 택 대주교
올해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은 로마에서 10월 4일과 5일에 거행됩니다.
그러나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정기회의에서, 해당 기간이 한국의 추석 연휴와 겹치는 점을 고려하여 예년과 마찬가지로 9월 마지막 주일인 28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